이수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

얼마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문화유산에 관한 국제학술대회에 초청 받아 최근 야심차게 새로 지은 박물관에 전시된 아크로폴리스의 유물을 구경할 기회를 가졌다. 새 박물관은 아테네 시가지의 비교적 높이 솟은 지대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 유적지의 아래쪽에 유적지의 신전과 평행하게 자리를 잡고, 그 내부에 신전의 평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있었다. 함께 발표한 그리스 학자가 우리의 조선왕조의궤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꺼내며, 그리스의 실패사례에 대해 상대적인 아쉬움과 부러움을 드러냈다.

세계 각지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영박물관의 주연급 유물 중에 영국의 엘긴 경이 1800년대 초반 영국으로 가져간 아크로폴리스의 부조 조각품들, 소위 엘긴마블이라는 유물이 있다. 이들은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고, 그리스 유물을 대표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리스 정부는 백방으로 반환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반환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도 대단했다.

그러나 최근 대영박물관과 영국 정부는 반환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혔고, 근래에 경제파탄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반환에 대한 열기가 식은 상태이다. 고향을 떠난 문화유산을 되찾아 온다는 것은 당해 국가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 국가의 선례가 다른 국가들의 유사한 사례들로 파급될 수도 있는 아주 미묘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을 되찾아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개는 상대국으로부터 거절당하기 일쑤이다.

그리스 정부는 대영박물관이나 영국 정부와의 협상을 치밀하고 신중하게 이끌지 못했다. 그리고 협상에 진전이 보이기도 전에 유물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착각하고, 박물관 설계과정에서 미리 전시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이 사실을 널리 알리면서 영국이 유물을 소장하게 된 과정의 합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유물 구입에 대한 합법적 서류를 가지고 있던 영국정부와 대영박물관은 원칙론을 내세워 겉으로는 신사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단호하게 반환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른 국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도 환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의 품으로 조선왕조의궤가 돌아올 때, 협상결과에 대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음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많았고, 일부는 왜 굳이 우리 품으로 돌아와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돌아온 것을 그리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 것을 되찾아 왔다는 국민의 정서적 만족감 때문만은 아니다. 유산이 우리 손으로 돌아옴으로 인해 생기는 다양한 활용가치와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 부러운 것이다. 즉, 의궤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유물을 옆에 두고 좀 더 자주 열람하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되면, 조선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성과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또한 많은 일반인들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물을 직접 보면서 선조들이 일구어 낸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문화유산의 환수는 그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를 보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수작업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것도 바로 이와 관련 있다. 환수는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의 목록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이해하며, 해당 유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확보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결과에 관계없이 그러한 절차만으로도 분명히 우리 유산에 대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정보들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환수의 결과에만 집착하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다양한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누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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