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불능’ ‘구타·폭언’ ‘가혹행위’ 그리고 ‘자살’…. 우리 군에 점철된 이미지다. 여기에 ‘폐쇄’와 ‘구식’이라는 단어까지 덧씌워지면서, 군은 말 그대로 어두운 냄새나 풀풀 풍기는 집단으로 인식이 돼왔다. 왜 이렇게 됐을까. 본지는 유독 군의 사건·사고만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서 그 문제점을 찾았다. 분명 군에도 우리 사회가 본받을 만한 점이 존재한다. 우리 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에게 외면 받지 않기 위해 혁신을 거듭하면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제, 누군가는 그들의 노고를 알려야 한다. 그 몫을 천지일보가 맡았다.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사상 최대 외교 이벤트였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지난달 27일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에는 무려 58명(53개 국가·4개 국제기구-EU는 상임의장 및 집행위원장 함께 참여)의 정상급 인사가 참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등 내로라하는 각국의 수장이 참석해 행사를 빛냈다.
이 같은 외교 행사를 치를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안전’이다. 세계의 수장이 한 나라,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테러리스트들의 표적물이 되기 쉽다. 정부는 이를 염두에 두고 경찰은 물론 군의 협조를 구해 만전을 기했다. 작은 사고라도 터지면, 국가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행사라는 점에서 경찰과 군은 경호·경비 작전에 온힘을 쏟았다.
그 결과는 ‘무결점 완전 작전’으로 나타났다. 단 한 건의 불미스러운 사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경호·경비 작전의 중심에는 ‘비호(飛虎)부대’로 불리는 제3공수특전여단(부대장 양철호 준장, 육사 38기)이 있었다. 여단은 가장 핵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코엑스 일대에서 경호·경비 작전을 수행, 완벽한 행사를 이끌었다. 특히 여단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 반복 숙달 훈련을 해왔다. 여단이 목표로 세웠던 것은 ‘완전무결한 임무수행’이었다.
군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계획도 완벽해야 하지만, 각개 장병의 행동도 완벽해야만 한다. 여단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계획은 꼼꼼히 빈틈없이 챙기고, 현장에 나가는 장병들은 ‘완벽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복, 또 반복 훈련을 했다. 이에 따라 수십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시범식 교육을 했는가 하면, 각 인원의 숙달 정도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때 거의 모든 과정을 양철호 여단장이 직접 챙겼다.
양 여단장은 G20 서울 정상회의 때에도 전군이 해야 할 작전을 기획하는 실무자였다. 당시에도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러냈다.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법 했지만, 그는 오히려 “핵안보정상회의 때 가장 우려했던 것은 ‘그때도 문제가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정신자세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여단은 양 여단장의 철저한 지시에 따라 작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전부 다 했다. 무엇보다도 거동이 수상한 사람을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장병들이 사용했던 삼단봉과 관련된 교육에 공을 들였다. 일반적으로 군인은 삼단봉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의 훈련과정이 필요했던 것. 삼단봉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관을 초빙해 교육하는 열의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송파구의 협조로 자전거를 빌려, 넓은 작전지역을 이동하는 장병들이 탈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바로, 이른바 ‘자전거 부대’다. 작전지역이 워낙 광활하다 보니 모든 지역을 걸어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장병들이 엉덩이 통증에 시달렸지만, 기동성이 확보돼 큰 도움이 됐다. 이와 함께 여단은 코엑스 밑으로 흐르는 지하 배수구 입구에 장병을 투입, 구청 취수 관리과 요원들과 함께 내부 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훈련과 작전을 수행한 장병들은 베레모와 선글라스를 쓴 채 코엑스 주변에 배치됐다. 흐르는 빗물을 닦을 수 없고, 잠시라도 앉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장병들은 ‘당당함’을 보여주기 위해 걷는 모습 하나까지 신경을 썼다.
이상원(중령) 12대대장은 “G20 때 임무를 수행한 결과 보통의 정신력 가지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G20 이후 병력의 30%가 바뀌면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지휘관으로서의 부담감도 있었지만, 다시 해보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 대대장은 “우리 병력이 걸어가는 모습, 서 있는 모습 등 모든 자세 연습을 다 시켰다. 자세를 흐트러트릴 수 없으니 어깨는 펴고, 느긋하면서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주위를 다 보는 연습을 시켰다”면서 “그런 자세가 나오지 않으면 위해 세력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범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그런 경호 작전을 해야 하는 게 우리 임무였고, 병력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번 작전의 최대 적은 ‘자신’이었다. 극도의 육체적 피로감과 심리적인 압박감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주시하는 환경에서 표정 하나 흐트러뜨릴 수 없는 심리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육체적 고통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당시 경호작전에 투입됐던 12대대 8중대 노요한 하사는 “가장 힘들었던 게 찬바람을 계속 쐬니까 입술이 다 찢어지고 피로 때문에 잇몸이 부어서 제대로 밥을 못 넘겼던 점”이라며 “작전 병력 80% 이상이 다 얼굴이 트고 입술이 찢어졌다”고 밝혔다. 이 대대장에 따르면 구강염 환자가 너무 많아서 군의관이 가지고 있는 약을 다 털어서 줘도 부족할 정도였다.
이어 노 하사는 “공수여단은 강한 체력단련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부대이고 우리가 작전을 수행했던 곳은 위해세력이 코엑스 등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한 번의 도전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대대장도 “‘우리가 해냈다’는 보람이 있었다. ‘너희만큼 훈련이 잘된 부대는 본적이 없다’ ‘너희라면 국민이 믿을 수 있겠다’ 이런 목소리를 들었을 때, 공수여단의 자긍심을 또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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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범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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