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새로 나온 어느 TV 광고에, 중년의 부장이 신세대들의 춤을 배우려 애를 쓰는 모습이 나온다. 부장은 책상 뒤에 숨어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이를 엿보는 직원들은 키득댄다. 광고는, 부장이 부하 직원들과 어울려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조용필의 노랫말이 있다. 이걸 두고 하는 말 아닌가 싶다. 회사를 다녀 본 사람들은 안다. 그 부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해 보면 별 것도 아닌 자리인데도, 그 자리에 아무나 오르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간 쓸개 다 빼고,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비고,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야비하게, 가혹한 모멸의 세월을 견디지 못한 자는 결코 오를 수 없는 자리가 그 자리다.

갓 입사한 신입들에게 부장은 부담스러운 존재다. 할아버지도 아닌 것이 아버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삼촌이나 형은 더더욱 아닌, 참으로 상대하기 난감하기 짝이 없는 기묘한 존재다. 결재 서류에 초점을 맞추느라 앞뒤로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고, 행여나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할까 봐 눈 맞추는 것이 겁이 나는, 벽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한 아무튼 가슴 먹먹하게 하는 이상한 존재다.

부장들은 안다. 저 역시 새파랗던 시절 그런 생각을 했고,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 어느 듯 자신도 청춘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존재가 돼 버렸다는 것을. 마음은 여전히 봄 햇살 가득한 캠퍼스에 머물고 있지만, 머지않아 지하철의 경로석이 반가워질 때가 올 것이란 걸 안다. 무엇보다 어린 부하 직원들이 자신과 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모르면, 바보다.

청춘 시절, 늙수그레한 부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너도 부장 돼 봐라. 이게, 너도 자식 낳아 봐라, 하는 소리와 똑같다. 자식 낳아 보지 않으면 절대 부모 마음 모른다. 그처럼 부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부장 마음 모른다.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그 말이, 부장이 되고 나서야 뒤통수를 후려친다. 아, 왕따구나.

그래,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는 부장은 두 가지로 반응한다. 하나는 그래도 내가 부장인데, 까불면 가만두지 않겠어, 하며 권위로 콱 눌러버리려 하는 부장이다. 다른 하나는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어린 아이들 비위 맞춰 주어야지, 비위 맞추는 게 내 특기인데 뭐, 하며 그야말로 밝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부장이다. 젊은 부하 직원들과 어울려 신세대 춤을 추는 광고 속 부장이 두 번째에 속하는 부장이다.

광고 속 부장이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연식이 오래 된 몸으로 춤까지 춰가며 아랫것들 비위 맞추고 그래서 젖은 낙엽처럼 딱 들러붙어 잘리지 않고 직장 생활 하루라도 더 해먹어야겠다는 보통의 말년 직장인들의 서글픈 현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드는 기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늙은 늑대가 존경받는 것은 먹이를 뒤쫓아 가서 그것을 죽일 수 있는 동안뿐이다. 키플링은 <정글북> 속에서 나이 들고 힘도 없어진 늙은 늑대를 따라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젊은 늑대들의 분노를 그리고 있다. 이 늙은 늑대 아케라가 노루를 잡으려다가 실패한 날이 그의 최후의 날이었다. 이가 빠진 이 늙은 늑대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자 한 마리의 젊은 늑대가 사정없이 그를 물어 죽인다.”

부장님들, 열심히 춤추시기 바랍니다. 춤마저 못 추게 되면, 그나마 그 직장도 끝장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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