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이렇게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날 줄이야. 아마 새누리당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거액을 들였다는 방송3사의 공동 출구조사마저 빗나가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달성, 새삼 민심의 엄중함을 새기고 또 새길 일이다.

이번 총선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만 피해도 선전했다는 평가가 가능한 선거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던 구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살기 위해 당명까지 바꿔가며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켰다. 당 쇄신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국민의 기대치에는 한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민주통합당보다는 훌륭했다. 선거정치에서는 그것이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좋았다는 것은 게임에서 이겼다는 뜻이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 총선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총선은 임기 말 정권심판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게다가 자고 나면 터지는 이명박 정부의 온갖 실정과 비리 의혹은 그야말로 숨 가쁠 지경이었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핵심 측근들의 타락상은 논외로 하더라도 민간인 불법사찰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엄청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온 나라가 이명박 정부에 등을 돌리는 시점에서 총선을 맞았으니,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선거환경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디 이뿐인가. 야권연대도 최대협상으로 마무리했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민주통합당이 잘만 하면 단독 과반도 넘볼 수 있었고, 최소한 통합진보당과 연대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 것으로 봤던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오만한 품격엔 약도 없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그 좋은 선거환경을, 잘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새누리당이 비대위를 꾸려서 쇄신론을 놓고 갑론을박 할 때 민주통합당은 임종석을 놓고 고민했다. 새누리당이 컷오프 등으로 공천 물갈이를 본격화할 때 민주통합당은 국민공천을 명분으로 공천물갈이 경쟁의 주도권을 포기해 버렸다. 정권심판론을 물타기 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야당심판론으로 반격하면서 김용민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을 질타할 때 민주통합당은 국민여론이 아니라 나꼼수 팬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은 민주통합당의 정권심판론에 이미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나 재보선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이제 그 국민적 정치 에너지를 모으고 다듬어서 날카롭게 만드는 것은 민주통합당의 능력이요, 민주통합당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에 대해 냉정해야 한다. 상대방보다 더 진중하고, 더 우월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받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정권을 빼앗겠다는 측은 지키겠다는 측보다 몇 배의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이를 간과했다. 공천과정에서부터 그 잘못을 비판하는 쓴소리가 나와도, 새로운 이슈를 만들지 말고 정권심판론에 올인해야 한다는 조언이 분출해도, 김용민 후보를 음참마속의 심정으로 사퇴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져도 한명숙 대표와 민주통합당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비판을 수구언론의 사주나 받는 ‘적들의 공세’로 치부해 버렸다. 한마디로 무능하고 오만한 것이며, 거기엔 약도 없다.

갈 길 바쁜 민주통합당의 앞길이 더 캄캄해 보인다. 하루빨리 대안정당으로 중심을 잡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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