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임에도 기실 지금의 세상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이 되고야 말았다. 과거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갈 때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어디선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안심이 되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두운 골목길에 사람의 형체라도 보이면 두려워지는 세상이 됐으니 사람만큼 무서운 존재도 없는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으니 바로 수원 살인 사건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고 가슴 저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르는 사람이 무섭고, 믿었던 경찰마저 믿지 못할 세상이 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피해 여성이 마지막에 느꼈을 감정이 온통 충격과 공포, 배신감으로 점철됐을 것을 생각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과 죄책감이 앞선다. 죽음의 문 앞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 경찰에 신고했을 이 여성에게 우리는 무엇이라 말해야 할 것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이 여성이 우리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너무도 크고 슬프기까지 하다. 경찰 초동수사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며, 사건을 대하는 경찰 공무원의 안일함과 방만함 등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거짓말과 은폐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도 현 경찰 공무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112 녹취록에 대한 것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혀를 끌끌 찰 내용들이다. 피해자가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도 이를 듣고 있던 경찰은 ‘부부싸움인가 보다’ ‘단순한 성폭행이네’ 등의 말을 꺼냈다고 한다. 신고를 받았다면 이유 불문하고 피해자를 찾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게 상식이다. 전화기 저편에서는 생사가 달려있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신고를 받는 쪽에서는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성폭행에 어찌 단순한 것이 있을 수 있으며, 단순한 성폭행이면 그저 그 상황을 다 듣고도 태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찰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알려준 것도 외려 유족이라고 한다. 탐문수사가 한창이어야 할 새벽에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경찰은 순찰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현장검증 때에는 피해자의 유족이 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이번 사건 해결을 두고 성과를 운운하거나, 하수구를 뚫어야 하니 쇠꼬챙이를 가지고 오라는 등 피해자와 유족을 두 번 죽이는 발언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탐문수사를 할 때 사이렌을 울렸으면 엽기적인 살인을 막을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데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경찰의 소극적이고 엉성한 대응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사이렌을 울리지 않은 이유로 새벽에 사이렌을 울리면 주민들이 싫어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니, 이는 자신들의 허물을 애꿎은 주민들에게 돌리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범죄가 일어난 현장을 찾기 위해 사이렌을 울린다고 경찰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경찰이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처음 이 수원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았을 때 경찰은 엽기적인 사건의 범인을 하루 만에 잡았기 때문에 수사를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녹취록 공개가 늦어진 것도 범인을 이미 잡았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과정이야 어떻든 범인만 잡으면 됐다는 식이다.

경찰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던,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한 여성의 바람은 그저 손에 잡히지 않는 한낱 바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무원, 특히 경찰과 같이 국민의 안녕과 안전, 생명을 지켜줘야 할 존재가 이제는 비난의 단골손님이 되어버렸으니 도움이 필요할 때 국민은 누구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많은 사건, 사고를 접하고 여러 범죄를 접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모든 사건을 형식적으로 접하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많은 범죄에 노출되고 힘든 환경 속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싸우는 의로운 경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경찰에 신뢰보다는 불신이 앞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단순한 사건도, 신고 전화를 받고도 안일하게 같은 물음을 되물을 만한 긴박하지 않은 사건도 없다. 피해자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긴박하고 무서운 사건이다. 정말이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들이 느끼는 범죄에 대한 역치(閾値)가 낮아지고 낮아져 국민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경찰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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