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7대 국가상징물 연구가
최근 언론의 이슈처럼 애국가를 4절까지 아는 국민이 드물다는 것은 나라의 수치이다. 의미를 이해하고 부르면 쉽지만 작사자를 못 찾아 어떤 의미로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행인 점은 작사자를 찾지 못해도 우리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가사를 작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양에서 작곡을 배운 한국인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곡’ 일명 나라사랑곡으로 작곡해 자부심이 크다.

가사의 의미를 각 절과 후렴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염출할 수가 있다.

1절은 영원한 희망(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2절은 민족의 기상(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은 한마음(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은 나라 사랑(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후렴은 나라(무궁화) 영토(삼천리) 발전(화려강산) 단결(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이다.

이를 요약하면 1절 희망, 2절 기상, 3절 한마음, 4절 애국, 후렴 나라․영토․발전․단결 등이다.

내력은 1876년 이후 선각자들에 의해 여러 개의 애국가가 불린다. 1896년 10월 30일 대한매일신보에 윤치호 작사 ‘무궁화가’에 남궁억의 협의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넣어, 그해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기록이 독립신문에 있다. 1907년을 전후해 가사손질과 음절을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에 맞추어 부른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작곡가 안익태가 애국가곡을 작곡해 이듬해 8월 베를린올림픽과 상해 임시정부, 미군정 등에서 응원가와 국가로 부른다.

대한민국에서 애국가는 1948년 8월 15일 건국행사 때 국가로 불렀다. 1955년 애국가 가사를 국정교과서와 백과사전에 게재, 작사자를 윤치호로 발굴해 투표결과 찬성 11, 반대 2가 나왔으나 만장일치가 안 되어 정하지 못한다.

지금은 전 세계가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미국 중국 등 최강국을 누르고 태극기가 중앙에 올라가며 애국가가 연주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또 민족의 전통음악 아리랑을 이은 K-팝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도취되면서 한류가 열광적인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국민의 태반이 애국가를 4절까지 모른다는 것은 기본에 문제가 있다. 그동안 수차례 가사의 의미 비판이나 절 축소, 또는 1~4절 통합과 후렴 1회 등의 문제제기로 여론이 들끓으나 법률이 전무해 개선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일의 반복으로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의미는 물론 가사까지 몰라 애국가의 위상이 추락되었다.

이를 위해 제안해 본다. 첫째는 이에 합당한 ‘국가상징물 지정 및 선양법’의 조속한 제정이다. 둘째는 법률에 입각한 작사자 발굴을 위해 정부의 현상금 제안과 발굴팀을 편성 운영, 작사자로 유력했던 윤치호 선생의 가사에 대한 여론수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해야 한다. 셋째는 이를 심의하는 합법적인 국가상징물 심의위원회의 구성을 통해 토론과 검토, 여론수렴 등을 거쳐 국민들이 공감하는 합리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작사자 발굴과 토론회, 여론수렴을 통한 가사가 보완된다면 국민들의 가슴에 의미가 새겨져 가사를 모른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으로 이어져 애국가 가사의 ‘동해’ 명칭과 함께 ‘독도’를 영원히 지킬 수 있고, 남산에 소나무는 잘 자라 민족의 기상이 되어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나 대한민국은 한반도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국가상징물로서 위상확립과 함께 국가의 정체성으로 정립되어 국가대변과 국민통합이 이루어져 애국가는 세계를 누비며 울려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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