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결국 이번에도 이렇게 가는 건가. 여야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쇄신에 나설 때만 해도 이번에는 많이 달라질 줄 알았다. 새누리당은 정책쇄신에 더해서 당명까지 바꾸며 쇄신의 깃발을 들었다. 물론 적잖은 성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통합당도 이에 뒤질세라 입만 열면 변화와 쇄신을 외쳤다. 그러나 인적쇄신의 꽃이라던 ‘공천 물갈이’ 단계 막판에 여야 모두 스텝이 꼬이더니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서는 아예 초심을 잃어버렸다.

왜 쇄신을 외쳤는가. 한바탕 쇼가 아니었다면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을 보노라면 반성은커녕 오만하고 추잡한 권력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이 중차대한 사건의 줄기는 보이지 않고 날만 새면 잔가지와 가시를 붙잡고 서로 난타전이다. 서로 할퀴고 육박전을 벌이는 사이, 정책 경쟁은 아예 맥도 못 추고 있다.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진실을 갈구하는데, 정작 정치권은 서로 반칙과 변칙을 쏟아내며 마치 민간인 불법사찰 정국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다. 그래서 묻는다. 그래서 표에 도움이 되는가. 

민간인 불법사찰, 민주주의의 파괴

대명천지에 권력이 일반 국민을 감시하고 사찰하는 사회, 공직자를 미행하며 사생활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는 작금의 현실은 비극을 넘어 공포 그 자체다. 민주주의의 가장 근간이 되는 민권이 짓밟히는 만행이요, 사회의 진화를 거스르는 반동에 불과하기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발전하고 진화하건만, 가끔은 이렇게 역류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진리다.

사건이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흙탕물로 뒤덮일수록 핵심을 잡아서 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진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괴이다. 거기에 민간인은 몇 명 안 된다거나, 순수 민간인이 아니라 비리 공직자들과 연루된 민간인이라는 등의 주장은 변명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참여정부에서도 민간인 불법사찰이 있었다는 의혹 제기도 사건의 줄기가 아니다. 국민은 잘못된 과거보다 잘못된 현재 상황에서 더 위기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잘못된 과거가 있었다면, 그것을 바꾸기 위해 이명박 정권을 택한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청와대가 이미 몰락한 노무현 정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선거 판세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반성이 아니라 결국 물 타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우리 국민은 알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암암리에 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으며, 오만한 권력에 의해 다수의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어디 사찰뿐이겠는가. 인터넷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혼이 난 사람도 많고, 촛불 한 번 들었다고 일찌감치 찍혀버린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시위에 나섰다가 얻어터진 국민도 수두룩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자. 입을 막고 눈을 가린다고 진실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진실을 숨기기 위해 더 큰 불편함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도 아직 기회가 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정권은 짧지만 인권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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