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러시아는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나라다. 동양도 아니면서 서양도 아닌, 내세울 전통도 변변치 않은 나라. 혹자는 그게 러시아의 자화상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직시한 단편적인 사유의 생산물일 따름이다. 러시아는 풍부하다. 문화로 보나, 지리로 보나, 인종으로 보나 러시아는 동과 서를 융합한 ‘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러시아 역사는 그동안 유럽 역사 속에서 피상적·부분적으로만 소개돼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의 독특하고 강렬한 역사는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 책은 복잡하지 않게 러시아 역사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천 년의 역사를 한 권 속에 담았다.

슬라브 최초의 나라 키예프 공국은 농업과 교역 두 분야에 산업 기반을 둔 나라였다. 중세기 기준에 따라 산정해 본 키예프 공국의 총생산량은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극소수였던 몇몇 주요 공국의 공들은 상당한 부를 거머쥔 성공적인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때 중요한 것은 11세기 중·서부 유럽의 지배적 사회정치 체제였던 봉건주의를 키예프 공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봉건주의란 종주국이 속국에 영지를 하사하고 그 대가로 속국은 종주국에 군사 원조와 조공의 의무를 지는 귀족들 간의 관계를 일컫는다. 이는 폴란드 서부지역에서 도입된 중세 유럽의 정치·군사 체계였다.

그런데 키예프 공국에서는 다른 형태의 체계가 세워졌다. 공후의 측근들과 부유한 귀족들로 이뤄진 상류층이 ‘보야르’라고 하는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통합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키예프 공국의 정치제도는 군국주의, 귀족주의, 그리고 딱 맞는 말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등 세 가지 특징이 섞여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이 민주적 요소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당시 공국에는 베체(민회)가 있어 자유 도시민들은 베체의 일원으로서 회의와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고 도시 근교 주민도 베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전통에 따라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로 가결됐어야 했다. 가끔은 의견차이가 심해 베체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공후·시장·시민집단이 배체를 소집할 수 있었고, 입법과 행정에 관한 한 배체는 보야르들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처럼 키예프 공국의 정치 제도는 매우 독특했다. 봉건제도가 뿌리내렸던 서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키예프 공국을 연구하고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책은 최초의 슬라브 국가인 키예프 공국(키예프 루시)의 탄생부터 최근 푸틴 대통령이 집권했던 8년간의 역사를 서술해 나간다.

에이브러햄 애셔 지음 / 아이비 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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