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민선 회장이다. 두산중공업 회장과 중앙대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 회장은 3년 전인 지난 2009년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역대 최다인 8명의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한 끝에 당선됐다. 청와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외풍을 받지 않고 체육인들 스스로 투표를 통해 뽑은 회장이었다.

민선 회장은 관선, 반민 형태의 종전 회장과는 많은 부분 차이를 보였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과 출전 경기 등을 위해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지만 회장을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을 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선거에서 ‘회장님 거수기’ 역할을 하며 악재로 작용했던 가맹단체 중앙대의원 제도를 폐지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자신도 여러 회장직을 맡으면서도 과감히 중앙대의원의 폐단을 없애고 공정한 선거문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전과는 몰라보게 바뀐 대한체육회장의 모습이다.

그동안 눈동냥, 귀동냥으로만 알았던 박 회장을 모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22일 중앙대에서 열린 스포츠 포럼21 특강에서였다. 박 회장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많은 말을 쏟아냈다. 지난 1982년 대한유도회를 시작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박 회장은 스포츠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번뜩이는 예단을 곁들이며 1시간 동안 속사포를 터뜨리는 듯한 열정으로 강연을 했다. 오랜 경륜과 경험에서 배어나온 국내 스포츠 행정의 최고 전문가다운 모습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각종 동‧하계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는 세계 10강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밝히면서 언어, 특히 영어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날아가서는 안 된다며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의 양태영(체조)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김동성(쇼트트랙)이 금메달을 놓친 것을 좋은 예로 들었다. 금메달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치나 임원 등이 영어로 한국선수에게 불리하게 적용된 경기 룰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올 초 뽑은 대한체육회 신입 직원 14명은 영어를 위주로 선발한 것도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을 좀 더 높이기 위한 일환이었다는 게 박 회장의 설명이다.

박 회장은 올 여름 열릴 2012 런던 하계올림픽에 대비해 런던 히드로공항 인근에 있는 브루밀대에 한국 선수단을 위한 기숙사, 식당 등을 임대해 현지 적응력을 높일 계획이고 한국 선수단 사상 처음으로 유도, 레슬링, 펜싱 등 선수들의 경기력 강화를 위해 파트너도 함께 동행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먹고 자는 문제와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던 예전의 올림픽 선수단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는 게다.

지난 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역대 최다관중인 45만 명을 기록, 최고로 성공한 대회였으나 우리나라가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해 빛이 바래고 말았다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결코 그런 전철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유리한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이외에 컬링, 모굴스키 등을 집중 육성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컬링은 젓가락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리한 경기로 이미 여자종목은 30대 아줌마들이 대표선수로 세계 상위권 실력에 근접해 있고 모굴스키도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 밴쿠버 동계올림픽 동메달을 딴 토비 도슨을 대표팀 코치로 영입해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빈발하는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어릴 때 골목에서 규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축구 등 여러 단체 경기를 통해 건강하게 심신을 단련할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운동이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교육과학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스포츠 강사와 토요 스포츠 강사를 5500여 명으로 대폭 늘린 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대한체육회에서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분리돼 있는 것은 각 국가올림픽위에서도 전례가 없는 것으로 이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과 관련해서는 수년 전 집창촌을 폐쇄하는 바람에 전국이 집창촌화하는 우를 범했던 것을 예로 들며 교묘하게 음성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양성화하는 것도 문제를 푸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자세를 내비쳤다.

1920년 조선체육회 초대 장두현 회장부터 현 37대 박용성 회장에 이르기까지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한 인사는 총 32명이다. 대한체육회장 자리가 과거 정치인들이 임명됐을 때는 정치지향적이고 권위적이었으나 민선 박용성 회장에 이르러서는 한층 민주화, 자율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자리는 한국 정치 사회가 변화해 온 여러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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