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득 부산항만소방서 영선119 안전센터장
각종 재난현장에서 시민들과 소방관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소들은 다양하지만 그 요소들은 시민들의 의식 향상과 소방관서의 적극적인 행정, 언론매체의 홍보로 인해 이미 우리 경각심의 영역 안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식범위 안에 포착된 다양한 위험요소에는 화재, 농연, 추락, 부상 등이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상식을 갖춘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일반화된 위험들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경각심의 사각에 위치하고 있는 패닉(Panic) 즉 공황장애이다.

감당키 어려운 위험에 직면하게 될 때 합리적인 판단 대신 본능에 따르게 되는 행위가 곧 패닉이다. 패닉 현상은 크게 지광, 퇴피, 좌회, 추종본능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소중한 지면을 빌어 패닉의 정의나 현학적인 의미를 나열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알기에 나는 33년간 소방관으로 봉직하며 얻게 된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며 우리는 언제나 잠재적인 요구조자이다. 이를 전제로 만약 자신이 위험에 직면했을 때 어찌 대처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본다면 실제 상황에서 그것은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소라면 자신의 위치와 신고를 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재난과 맞닥뜨리게 되면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고 횡설수설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전형적인 패닉의 예로 볼 수 있다. 이는 소방관의 출동을 지연시키게 되어 결과적으로 피해를 가중시키게 된다.

재난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된 요구조자들 역시 패닉을 경험하게 된다. 일례를 들면 2009년 발생한 지하노래주점 화재사건에서 피해자들이 비교적 가까운 탈출로인 주출입구와 떨어진 비상구에 몰려 사망한 채 발견된 일이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추종본능과 퇴피본능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추정컨대 화재가 발생한 장소에서 벗어나려는 퇴피본능이 발현됨과 동시에 아무 생각없이 다수의 사람이 몰려가는 곳이 안전할 거라는 막연한 본능, 즉 추종본능이 결합되어 빚어낸 참사였을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농연 속에서 뜨거운 열기에 직면하게 되면 잘 훈련되고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소방관조차 패닉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패닉은 재난현장에 관여하는 모든 이에게 찾아오는 치명적인 불청객이다. 이 패닉은 약이나 치료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패닉에 맞는 처방은 침착함 밖에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33년간 수많은 패닉을 경험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방관 생활의 막바지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역시 훈련된 침착함 덕택이라 생각한다. 일반 시민들에게 이런 훈련된 침착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만약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이 말을 구원의 주문처럼 기억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멈추고, 생각하고, 움직여라!” 그리고 “119에 신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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