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삼 미술품 복원가ㆍ미술품 복원연구소 art C&R 소장
최근 수년 내에 국내 미술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미술품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 리히텐 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박수근의 ‘빨래터’일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작품성보다는 이 미술품에 얽힌 스켄달로 연일 메스컴을 장식하다보니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작품 제목은 아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빨래터’의 경우는 미술품 진위 논란의 한 중심에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일 수 있는 45억에 낙찰된 국민작가의 그림이 짝퉁이라는 용감한(?) 의혹제기는 일반 대중에게는 짜릿한 흥분을 제공할 수 있는 참신한 소재이기도 했다.

매스컴은 이를 놓치지 않고 연일 방송과 신문지상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빨래터’ 진위의 문제는 법정으로 갔고 마침내 그곳에서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판결이 나고서야 일단락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이 작품에 대한 진위 논란은 너무 강하게 인식되어서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듯하다. 이 ‘빨래터’가 한 백화점의 갤러리에서 위작 논란 이후 5년만에 다시 선보인다고 한다. 이 작품의 명예회복을 위한 발걸음인 셈이다.

우리 미술품에 대한 위작 논란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처럼 과거에도 간혹 있기는 했으나 법정까지 갔던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2005년 한 미술품 수집가와 이중섭 화백의 아들까지 관련된 이중섭 작품의 위작 사건이 작품의 위작여부를 밝히기 위해 법정에 간 최초의 사건이었다. 수사과정에서 문제의 수집가에게서 2800여점의 이중섭, 박수근 작품이 더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중섭의 작품들과 박수근 ‘빨래터’의 위작논란은 실은 매우 다른 양상이었다. 이중섭 위작사건의 경우에는 작품들의 질이 형편없어서 중학생 정도의 안목으로도 가려 낼 수 있을 정도이고 수량도 비현실적이거니와 출처도 불분명해서 진품임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소유주와 몇몇 주변사람들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반면에 ‘빨래터’의 경우는 반대로 질적인 면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진짜임을 주장하지만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가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혹 제기 주장은 매스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이들이 마치 불의에 도전하는 전사의 이미지로 비추어 졌고 그림을 본적도 없는 사람들까지 가짜라고 믿을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몇 몇 블러거들이 제기한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 제기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 블러거들은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하지만 의혹 중에 일부가 해소되어도 남은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졸업한 대학교 관계자가 방송에 나와서 증언을 해도 조작이 되었다거나 매수되었다고 주장하는 답답한 형국이다. 의혹 당사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빨래터’가 법원에 가게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진품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의혹제기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공정한 심판대 위에서 각자 정황과 증거를 제시해서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가짜라는 심증이 있는 위작을 가짜라고 밝히는 일은 비교적 쉽다. 왜냐하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어딘가 남아 있을 가짜의 흔적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작품이 진짜임을 밝히는 일은 감식안을 통해 진짜임을 추정할 수는 있어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하면 매우 어려운 것이 미술품의 속성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반 고흐 작품은 당대 대부분의 작가가 사용하였던 물감과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당대의 작가들과 재료 상으로 차이가 없지만 작가의 붓놀림으로 창조해 낸 소위 작품의 ‘아우라’로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흐의 작품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도 당연히 감식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술품 감정에 있어서 감식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는 주관적인 의견이라 이유로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 반면에 작품에 출처나 과학적인 조사 등 객관적인 증거가 더 중요한 판결의 근거가 된다.

법정에서 ‘빨래터’을 진품으로 입증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조사결과 의혹들이 이유 없음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미술품에 대한 무분별한 의혹 제기에 의해 멀쩡한 작품도 가짜란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술품 감정하는 일은 늘 긴장되고 부담스럽지만 특히 이 과정에서 혹여나 진짜 그림을 가짜로 감정해서 죄를 지을까 두렵다”고 한 미술품 감정위원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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