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가슴을 울리는 기사 하나를 접하게 됐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18일간이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던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씨와 관련된 얘기다.

 

얘기인즉, 방송인 김제동 씨에게 북한 주민을 위한 휴먼콘서트의 공동진행을 제안했다는 기사다.

그녀는 김제동 씨에게 보내는 메일을 통해 “손도 쓸 수 없이 날마다 살과 뼈가 깎여 나가는 아픔 속에 사는 2만 3000명의 탈북자만큼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게 더욱 슬프다”고 토로했다.

이어 “휴먼 콘서트를 통해 북한 주민도 사람인 것을 남한 젊은이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면서, “구럼비 바위 지키러 10번 갈 때 탈북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콘서트에도 몇 번은 참여해 달라”고 하면서, “정의에는 (진보와 보수) 편이 없는 만큼 꼭 동참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는 간절한 호소와 책망이 함께 담긴 메시지로 꼬집었다.

이애란 씨의 이 질책성 제안이 과연 김제동 씨에게만 해당될까를 생각해 보면서, 필자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관심사는 바로 탈북자 또는 탈북자 문제에 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왠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핏줄로서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탈북자들의 찢어지는 절규가 우리의 귓전엔 들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혹여 들렸다 하더라도 먼 나라 얘기로만 인식돼 왔던 것도 사실이었음을 이 순간 양심껏 고백이라도 해보자.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한 치 앞도 못보고 또 보인다 하더라도 애써 외면해온 의원들을 잠시나마 부끄럽게 했고, 무관심했던 국민들의 생각에 잔잔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게 한 것은 그나마 박선영 의원의 단식투쟁이었다. 이제라도 국민들의 가슴에 ‘아! 이보다 더 급하고 비극적이고 중한 일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으니 가녀린 그녀의 희생적 솔선수범은 가히 시대의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1907년에 고종황제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등의 밀사를 보내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무효임을 주장하던 사건을 떠오르게 한, 이 시대에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지난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탈북자 문제에 대해 국제 사회의 반응을 전하고, 나아가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함으로써 ‘탈북자 대모(大母)’라는 닉네임까지 얻게 한 일이었다.

그렇다. 탈북자 문제는 탈북자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깨닫게 하는 중대한 순간이었다. 바로 우리의 문제요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얘기며 우리의 아픔이며 나의 아픔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영화배우 차인표 씨가 방송에 나와 이 탈북자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의 할 일은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고 한 말이 필자의 가슴 속엔 아직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어서 “어렸을 때 어떤 통에 머리가 들어는 갔으나 나오지를 못해 죽는 줄만 알았다”고 회고하면서, “그 통 안에서 아무리 살려달라고 소리쳐도 밖에선 들리지가 않았다”면서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순간 어린 형이 이 사실을 알고 동생을 살려달라고 크게 소리쳐 울어대자 비로소 어머니와 마을 주민들이 달려오게 됐고, 통에서 자신을 빼내 줄 수 있었다는 예화를 들며, “오늘 우리가 한 형제로서 해야 할 일이 뭐겠는가. 그것은 바로 깜깜한 터널에 갇혀 있는 내 형제를 살려달라고 큰소리로 소리쳐 울어대 주는 일”이라며, “그랬을 때만이 주변국과 나아가 온 세계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그의 절절한 부탁이 너무나 설득력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어떻게 해주길, 나아가 세계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고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아니 내가 울어 줄 때 중국이 나아가 세계가 들을 수 있다는 지극히 간단한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고 하면서 그동안 너무나 긴 세월을 반목과 질시 속에서 잊어 왔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 사상이 우리를 뒤덮고 있는 사이에, 북녘 동포들은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그래도 우리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우리의 비겁한 모습을 반성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죽어가는 형제들을 살릴 방도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우리 모두가 시급히 해야 할 몫임을 부인하지 말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