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회사나 가정에서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안으로 삭히기만 하면 속병이 생길 수 있으니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 버리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하지만 말이란 게 한번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마구 말을 쏟아내고 나면 십중팔구 후회하게 된다. 참자니 속 터지고, 화를 내자니 뒤가 걱정되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컨설턴트인 로버트 호치하이저는 ‘절대로 사표 쓰지 마라’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자아의 요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항복해라.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험하고 몰상식하고 상스러운 욕설을 퍼부어라. 그리고 그 순간까지 마음속에 품어 왔던, 수개월간의, 아니 수년 간의 온갖 원한이 후련히 해소될 때까지 계속해라.”

저자는 그러나 욕을 퍼붓고 싶은 사람의 면전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전화기에 대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편지를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절대 부쳐서는 안 된다.

쓰고 싶은 대로 쓴 편지를 일단 책상 서랍에 넣어 둔다. 하루가 지난 다음 꺼내 읽어본다. 문법이나 철자가 틀린 게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다음 다시 이틀 동안 서랍에 처박아 둔다. 그리고 다시 꺼내 신중하게 읽어 본다. 이 때, 대개는 이런 편지를 쓴 자신이 과연 성숙한 어른인가, 회의가 들게 마련이고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편지요법은, 편지를 쓰는 동안은 속이 후련할 것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본 상사나 동료들은 업무에 열심인 줄 알고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므로, 이게 바로 꿩 먹고 알 먹기다.

화가 났을 때 주저 없이 폭발해 버리는 사람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된다.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은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인격수양이 덜 된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결코 좋을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화를 내기보다는 참는 것이 좋고, 만약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 때는 속으로 열까지 센다든지, 깊은 숨을 열 번 쉬라고 조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편지 요법도 사실은 화가 났을 때 바로 상대에게 분노를 드러낼 것이 아니라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스스로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

종이에 편지를 쓰던 시절에는 편지에 관한 사연들도 많았다. 연모하는 동네 이성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어린 동생을 사탕으로 꾀어 편지를 주고받았다거나 해마다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단체로 위문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편지를 소재로 한 유행가도 많았다.

종이 편지의 매력은 기다림이다. 잘 못 쓰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고 그래서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 쓸 수밖에 없고 또 그걸 부치고 다시 답장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빛의 속도 운운하는 요즘에는 어림없는 소리다.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세상이다. 문자를 날렸다가 바로 답이 없으면 왜 씹느냐고 짜증을 낸다. 기다릴 줄도 모르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일대일로 은밀하게 주고받는 편지가 아니라 아예 세상에 드러내놓고 주고받는 세상이다. 편지라고 하지 않고 메일이라고 한다. 그 말이 그 말이지만, 사실은 다른 의미로 쓰인다. 글자 하나 문구 하나를 쓰기 위해 열 번 스무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던 종이 편지쓰기 습관으로는 메일의 시대를 살기 힘들다.

가슴보다 머리가, 머리보다는 손이 더 앞질러 버리는 세상이다. 지금 당신의 손가락은 또 무엇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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