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하나같이 쇄신과 혁명을 부르짖던 ‘공천 물갈이론’이 이번에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나로 끝나고 말았다.

새누리당은 잘 나가다가 막판에 강남에서 스텝이 꼬여버렸고, 민주통합당은 ‘친노 굴레’를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한명숙 대표까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사과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대체로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비례대표 공천만큼은 좀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마저도 실망이다. 각 부문 전문가들을 찾느라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만 구색 맞추기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 실상을 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율된 듯이 다수의 ‘진짜’들이 빠지고 말았다. 누가, 왜 뺐을까. 비례대표제가 무슨 전리품이 아닌데도 말이다.

쇄신이 아니라 쇄신의 포기였다

새누리당 정홍원 공천위원장은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하고 나서 ‘국민 감동’에 가장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공천을 취소시킨 이봉화 전 보건복지부 차관의 경우는 감동이 아니라 공분(公憤)을 자아낼 만한 졸작 중의 졸작이다. 이미 답이 나온 인사를 어떻게 비례대표 후보로, 그것도 당선 안정권인 15번에 배치했는지 참으로 그 ‘보이지 않는 손’이 궁금할 따름이다. 뼛속까지 쇄신, 시스템 공천 등의 약속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잘못된 과거와 확실히 단절하겠다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결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이른바 ‘MB 노믹스’ 입안자인 이만우 고대 교수를 부적격 논란에도 그대로 공천을 강행시켰다. ‘보이지 않는 손’이 무서웠기 때문일까.

새누리당을 비대위 체제로 몰아넣고, 당명까지 바꾸게 했던 근본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서민경제를 황폐화시킨 ‘MB 노믹스’ 정책기조가 원흉이다. 그런데 그 입안자를 새누리당이 비례대표 10번으로 공천한 것이다.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민주통합당 박영선 최고위원이 잘못된 공천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최고위원직을 던졌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이끌 유종일 교수, 검찰개혁을 이끌 유재만 변호사 등이 사실상 ‘공천 낭인’으로 전락한 데 대한 분노의 표시인 셈이다.

박 최고위원은 물러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이 한명숙 대표를 흔들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친노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19대 총선의 공천과정은 ‘친노 부활의 축제’가 된 셈이다. 그들만의 축제, 과연 이 축제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먼저 ‘도덕 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했다. 그것은 무자비한 야수의 시장경제 원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의 손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행태는 쇄신과 변혁, 진보를 바라는 대다수 유권자의 기대를 통째로 짓밟고 있다. 실망을 넘어 절망을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부디 우리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여야가 다 똑같다는 논리로 대충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된다. 무관심이야 말로 민주시민의 최대 적이다. 세치 혀로, 고운 미소로 유권자들을 농단하는 정치 모리배들, 결국은 유권자가 단죄해야 한다. 이제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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