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주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역임한 최세창 전 국방장관과의 저녁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김운용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이날 만찬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사격 대표팀 훈련 지원을 담당했던 육군 88사격단 박종규(朴倧珪) 전 단장(당시 대령)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최 전 장관과 여러 얘기를 하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박 전 단장이 문득 생각나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봤던 것이었는데 뜻밖의 대답이었다. 최 전 장관은 “아까운 후배였는데…”라며 침통한 분위기로 말끝을 흐렸다. 1943년생으로 건강과 체력관리를 잘만 하면 더 살 수 있을 법한 나이였다고 생각하니 그의 때 이른 죽음에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사격 담당기자를 할 때 박 전 단장은 취재원으로 자주 만났던 사이였다. 1987년 중국 북경에서 열렸던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와 그해 서울 월드컵 사격대회에서 한국대표팀 훈련을 책임지던 대한사격연맹 이사 출신의 박 전 단장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사격 사상 처음으로 여갑순, 이은철이 각각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데 발판을 만들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냈던 박종규 전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동명이인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화제가 됐었다.

사실 박 전 단장은 박종규(朴鐘圭)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군부 쿠데타에 연관이 됐고, 사격계에도 관여를 했기 때문이었다. ‘피스톨 박’으로 불린 박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1961년 박정희 장군과 함께 5‧16 쿠데타를 일으켜 3공화국 정권을 창출했다. 오랫동안 청와대 경호실장을 맡았다가 1974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피격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대한사격연맹 회장과 대한체육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낸 뒤 1985년 타계했다.

박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권력과 부를 누렸던 데 반해 박 전 단장은 어찌보면 비운의 군인이며 역사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었다. 명문 대전고를 졸업, 육사 23기로 임관한 박 전 단장은 공수부대에서 10년간 근무를 하며 동기로서는 유일하게 미국 특수전 학교를 수료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그러나 1979년 12‧12사태를 맞닥뜨리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신군부 전두환 소장 측인 직속 상관 최세창 3공수 특전여단장으로부터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연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예하 대대장으로 병력을 끌고 출동했다. 박 전 단장은 개인적으로는 당시 정병주 특전 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교전이 벌어져 손에 총상을 입었고, 초급장교 시절부터 공수부대에서 줄창 근무해 친형제 못지않게 친하게 지냈던 육사 2년 후배인 김오랑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 자신의 부하들 총에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부하들의 하극상에 의해 끌려가 고초를 겪으며 강제 예편된 정병주 전 특전 사령관은 10년 뒤인 1989년 비관 자살을 했다.

12‧12 군사쿠데타는 결과적으로 박 전 단장에게 뼈 아픈 상처를 남겼다. 올림픽에서 한국 사격을 위해 큰 대들보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2‧12의 악연 때문에 소장시절인 1993년 하나회 숙군작업으로 예편된 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1997년 사법처리 돼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것이었다.

군에 있을 때 “전역 후 모범 택시기사를 하면서 살고 싶다”며 소박한 꿈을 말했던 박 전 단장은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가혹한 현실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사법처리로 군 연금지급이 중단돼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인이 동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꾸리는 등 극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아마도 지병인 암도 12‧12의 아픔과 불명예 등의 화병 때문이었을 게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인의 길을 걸었던 박 전 단장은 예전 필자와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기자는 마음을 담은 말을 하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기는 하나 김 기자는 공수부대 장교출신에다 동생처럼 친하게 느껴져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다. 또 다시 12‧12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군인은 직속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학구적이고 의리와 정이 두터운 사나이다운 면모를 짙게 풍겼던 박 전 단장이 12‧12 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면 군인으로서, 스포츠인으로서 더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옷깃이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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