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천제아도’ 영인본에 수록된 관아. (사진제공: 국립중앙도서관)

문신 한필교가 남긴 ‘숙천제아도’
원형복원 위한 중요한 고증 자료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지방의 행정중심부 역할을 했던 관아가 화첩 한권에 모두 담겼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한필교(1807~1878)가 자신이 42년 동안 부임했던 관아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화첩이다.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라는 제목의 화첩은 대부분 당시 사람들이 일기나 자서전의 글로 시대상과 심정 등을 남긴 것과는 달리, 사대부 문신이 그림으로 지방 관아의 모습과 주변 마을 풍경을 세밀하게 표현한 일종의 그림책이다.

아울러 책에는 그림뿐만 아니라 길과 산 이름, 관청건물명, 위치 등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책 한쪽에는 1837년 목릉참봉(종9품)으로 부임한 곳부터 1878년 공조판서로 생을 마칠 때까지의 내용이 소상히 기록돼 있으며, 각 그림의 오른쪽 옆에는 관아의 이름과 위치, 관직이 내려진 날짜가 기록됐다.

중앙관서일 경우 자신이 맡은 업무도 작은 글씨로 남기고 지방 관아 그림에는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밝혔다. 이렇게 꼼꼼히 기록된 책은 흔적 없이 사라진 옛 고을의 모습을 살피는 데 중요한 그림 지도로서 손색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천제아도’를 한글로 풀면 한마디로 ‘평생 거쳐 온 여러 관아의 그림들’이라는 뜻이다.

한필교는 “정유년(1837)에 처음 벼슬길에 올랐다. 한가한 날 화공에게 명해 내가 그동안 거쳐 왔던 관아들을 그리게 했다. 전체 그림을 화첩으로 장정하고, 그림 옆에는 마을과 내가 맡았던 직책을 썼다. 벼슬을 한 번 옮길 때마다 이렇게 하기를 반복했으니, 나중에 고찰하려고 대비한 것”이라고 책에 설명해 놓았다.

일제 때 전부 소실된 관아터가 지방 곳곳에서 속속히 발굴되고 있는 가운데 ‘숙천제아도’는 원형 복원을 위한 중요한 자료다.

지금 발굴된 관아터로는 중앙관서 중에 종친부와 삼군부가 다른 장소로 옮겨진 채 일부 건물만 남았고 지방 관아도 동헌이나 객사 일부만 있을 뿐이다.

‘숙천제아도’ 원본은 현재 하버드 대학교 옌칭도서관 희귀본 소장실에 보관돼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 학자 4명이 모여 원본을 한글과 영어로 번역해 옮기고 해설을 달아 별책으로 발간했다. 국․영역을 위해 김선주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이 책임편집을 맡았으며, 해설을 위한 서지학에 허경진·김선주, 건축역사학에 송인호, 미술사학에 박정혜 씨가 참여해 소장 가치가 있는 번역집을 발간하는 데 성공했다.

저자 한필교는 1840년 책의 서문에서 “그곳에 가보지 않고도 이 그림이 어느 관청, 어느 관아라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으니, 이런 그림이 아니라면 어찌 알 수 있을까”라고 기록해 놓았다.

비록 원본은 해외에 소장돼 있으나 그의 말처럼 최근 국․영역된 번역본을 통해 당시 고을 및 관아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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