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교육자로 한평생 생명을 사랑한 바위 같은 이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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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마 유치환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넘치는 생명력으로 여전히 시 속에서 살아 숨쉬는 청마 유치환

[글마루=김응용 기자]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의 출생지를 두고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라는 의견과 경남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라는 의견이 있다. 이에 따라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방하마을에는 청마기념관이 세워져있고, 청마 생가도 복원되어 있다.

한편 경남 통영시 정량동 863-1번지에는 청마문학관이 세워져있고, 역시 청마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원래는 태평동이 생가지만 통영시와 통영 앞바다를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망일봉 자락에 문학관과 생가를 복원했다고 함).

하지만 기자는 청마의 출생지가 어디인가 보다는 두 지역이 모두 청마의 고향이고 싶어 할 정도로 청마가 거장(巨匠)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왜 그 옛날에는 임금이 하루만 머물러도 큰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던가? 거제와 통영을 비롯해 청마의 흔적이 남은 곳곳에 시비가 세워져서 그곳이 청마와 인연이 있는 곳임을 자랑하고 있다.

곳곳에서 청마를 추억하고 있는 시비(詩碑)들

이글을 읽고 청마와 관련된 시비와 교훈비를 찾아 나설 독자를 위해 안내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비(詩碑)에는 거제시 마전동 장승포 연안부두공원과 부산시 중구 용두산공원에 <그리움> 시비가 있으며, 통영시 남망산공원과 동래고교, 부산시 사하구 에덴공원,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 내자빌딩,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신천지미술관에 <깃발> 시비가 있고, 통영시 청마의 거리 통영우체국 앞과 서울시 서초구 청계산 내 매봉 정상에 <행복> 시비가 있고, 부산남여상고와 부산시 수정동 수정가로공원(청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곳)에 <바위> 시비가 있고, 경주시 불국사 부근에 <석굴암대불> 시비가 있고, 거제시 둔덕면 청마 고향시비동산에 <거제도 둔덕골> 시비가 있다.

그리고 청마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경남여고 교훈비에는 <겨레의 밭>이란 작품에 모자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억세고 슬기로운 겨레는 오직 어엿한 모성애에서 이루어지나니 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닦는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또 역시 청마가 교장으로 재직했던 경주고교에는 청마의 교육 철학이라 할 수 있는 <큰 나의 밝힘>이란 작품이 있다.

출생에서 결혼까지

청마는 1908년 7월 14일(음력)에 아버지 진주 유씨(柳氏) 준수(焌秀)와 어머니 밀양 박씨(朴氏) 우수(又守) 사이에 8남매(5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바로 위의 형이 극작가인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임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버지 유준수는 한약국을 운영 했는데 이 덕분에 청마는 14세가 되던 1922년에 통영초등학교 4학년을 수료하고 일본 부잔(豊山)중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된다.

형 치진은 이미 3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1923년에는 아우 치상도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1925년 4학년 2학기가 됐을 때 청마는 부친이 손 댄 다른 사업이 실패하자 귀국하여 동래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1927년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1928년 4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에 문과 본과에 입학하나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아 1학년 때 중퇴하고 만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귀국한다. 21세 되던 1929년 통영초등학교 12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창생 권재순과 결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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