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그리고는 곧장 기둥에 구슬을 부딪쳐 깨려고 치켜들었다. 구슬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급해진 진왕은 황급히 인상여에게 사과를 했다. 그는 곧장 지도를 가지고 오게 하여 조나라에 떼어 줄 고을 15개를 가리켰다. 인상여는 그것이 진왕의 임기응변이라고 간파했다. 인상여는 다시 말했다. “화씨의 구슬은 천하에 이름 높은 보물입니다. 조나라 왕은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바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구슬을 이곳으로 가져올 때 닷새 동안 온갖 몸가짐을 바르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도 구슬을 받으실 때는 조나라 왕처럼 닷새 동안 나쁜 것을 물리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시고 난 뒤 궁전에서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저도 기꺼이 구슬을 바치고 돌아가겠습니다.”
진왕은 그 말을 승낙하고 곧 5일 동안 몸가짐을 바로하기로 결정하고 인상여를 광성이라는 집에 머물도록 했다.
인상여는 진왕의 약속은 형식이고 기어이 땅은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온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를 골라 남루한 옷을 입혀 구슬을 숨겨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진나라 왕은 닷새가 지나자 궁정에서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인상여를 다시 만났다. 인상여는 진왕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진나라의 역대 왕은 목공이래로 20대에 걸쳐서 믿음이 두터운 분들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이제 저는 대왕의 꾀에 넘어가 우리 조나라 왕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을 두려워하여 구슬을 조나라로 몰래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강국이고 우리는 약한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지금이라도 사자를 보내시기만 하면 우리 조나라는 즉시 구슬을 바치겠습니다. 강국인 진나라가 먼저 약속한 15개 고을을 내놓으신다면 조나라가 구슬이 아까워 어찌 대왕께 원한 사는 일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소인은 대왕을 기만한 죄를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가령 끓는 물에 넣고 죽인다 해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를 죽이기 전에 신하들과 잘 상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왕은 그 말을 듣고 신하들과 마주보며 아연할 뿐이었다. 그 순간 한 신하가 인상여를 잡아 포박하라고 하자 진왕이 만류했다. 진왕은 생각해 보았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고 해도 이미 조나라로 떠난 구슬이 돌아올 리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조나라와의 우호도 깨진다. 인상여를 후대하여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조나라 왕이 구슬 하나 때문에 진나라를 배신할 리도 없었다. 인상여는 진나라를 떠나 무사히 귀국했다. 조나라 왕은 인상여가 귀국하자 사자로서의 임무를 훌륭하게 한 공로로 그를 대부에 앉혔다. 결국 그 사건은 진나라가 땅을 주지 않은 대신 조나라도 구슬을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조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하여 석성을 빼앗았다. 그 다음 해(기원전 280년)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군사 2만 명을 죽였다. 기세가 등등한 진왕은 조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그는 두 나라의 우호를 위하여 하서의 면지에서 회담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 제의를 받은 조왕은 두려워서 회담 장소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왕의 그런 행동을 본 염파 장군과 인상여가 나섰다.
“왕께서 회담에 가시지 않으면 조나라가 비겁하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말에 조왕은 마지못해 회담장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회담에는 인상여가 따라가기로 했다. 일행을 국경까지 전송한 염파는 왕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다짐을 받았다.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회담을 끝내고 돌아오실 때까지 30일이 걸리겠습니다. 30일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태자를 왕으로 즉위시켜 진나라의 야망을 꺾겠습니다.” 왕은 염파의 의견을 승낙하고 회담 장소인 면지로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