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송, 그리고 법어

[글마루=김명화 기자] 성철스님은 숨을 거두기 직전 열반송을 남겼다. 하지만 열반송과 1987년 초파일에 설파한 법어는 많은 이들의 논란의 대상이 됐다. 열반송은 서두에서 제시했으므로 초파일 법어를 아래에 소개한다.
‘화합하는 길’

사탄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마는,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 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모시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 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 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 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 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동산에 앉아서 무엇을 그다지도 슬퍼하는가?
벌 나비춤을 추니 함께 같이 노래하며 춤을 추세.


이 내용은 1987년 4월 23일 조선일보와 경향일보에 실려 언론에 화제가 됐다. 왜 성철스님은 중생들에게 이러한 법어를 설파했을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와 퇴옹성철의 위상과 역할’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위의 질문에 관한 답을 제시했다.

“우리 사회의 시대적 현안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는 않는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법문’이다.”

‘화합하는 길’에 대한 해석은 언론과 학계, 교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에 관한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겠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해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성불, 즉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도 필요 없고 조사도 필요 없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부처다, 조사다 하는 것은 다 중생의 꿈을 깨우치기 위한 약이기 때문에 견성성불(見性成佛, 본래의 천성을 깨달아 불도를 거둠)해 참다운 해탈을 성취하면 부처도 필요 없고 조사도 필요 없는 참다운 대자유자재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1982년 성철스님의 법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성철스님은 부처님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깨달음에 이르러 도(道)를 통달하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대해탈·대자유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따로 부처님을 구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러한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부처님 최후의 설법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처님은 80세에 완전한 입열반(入涅槃)에 드는데 그때 북쪽 쿠시나가라국(Kusinagara, 인도 북부 카시촌)의 사라 나무숲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설법을 남긴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결코 남을 등불로 삼지말라. 모든 생(生)한 것은 반드시 멸(滅)하는 법이다(無常). 그러므로 부지런히 힘써 해탈(解脫)을 구하라.

오직 일생을 부처님의 뜻만 따라 살고자 했던 성철스님. 큰스님이 우매한 중생에게 바랐던 바는 한 가지가 아니었을까. 부처님의 뜻대로 참다운 이치를 깨달아 해탈에 이르는 길. 바로 구도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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