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거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제자 혜거스님에게 듣는 스승 탄허스님

[글마루=김지윤 기자] 탄허스님을 기리는 제자가 있다. 지금은 한국의 큰스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스님이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탄허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스승을 기리기 위해 기념박물관을 개관했다. 바로 혜거스님이다. 스님은 서울시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에서 이사장을 겸하고 있으면서 스승의 평생 뜻인 ‘인재 양성’을 받들고 선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강남구 개포3동에 위치한 금강선원에서 스님을 만나 고승 탄허스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탄허스님께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집필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승님은 홀로 불경 75권을 한국어로 번역하셨습니다. 이는 세조 때 신미선사 중심으로 국책사업을 펼쳐 역경한 것보다 무려 10권가량 많은 수죠. 감원(승려가 공부하는 곳)에서 배
우는 책을 다 번역하셨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본인을 회고하는 책을 쓰실 겨를이 없었죠. 또 쓸 겨를이 있었다고 한들 스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셨어요. 임종 직전까지, 경전을 붙잡고 번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주변에서 책 집필을 권하지 않으셨는지요.

주변에서 권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스님의 성격과 일정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스님은 밤 9시만 되면 주무시고 새벽 1~2시경에 일어나셨습니다. 아침 공양 전까지 일반인이 온종일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끝마치십니다. 공양 이후엔 제자들과 같이 교정 작업을 하셨습니다. 아! 책 집필과 관련해 스승님께 한 가지 약속을 받았는데 바로 ‘불교개론’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를 엮지 못한 채 스님은 입적하셨죠.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 도교 등을 통달하셨는데요.

불경만 번역하신 게 아닙니다. 유교 최고의 교재인 ‘주역’, 도교에서도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경’을 다 번역하셨습니다. 도덕경이나 남화경은 번역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특히 도덕경은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사실 어려운 글 중 하나입니다. 이를 원전과 주석까지 다 명쾌하게 번역하신 거죠.

번역에만 열중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죠. 화엄경은 경 하나를 가지고 몇 년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해할까 말까입니다. 스승께서 번역한 후로는 승가 과정을 3년 안에 마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스님은 번역하실 때 의역이 아닌 직역을 택하셨어요. 당신의 소견을 하나도 넣지 않고 경의 뜻만을 전달하셨습니다. 원전을 보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죠.


증산도에서는 탄허스님의 예언을 들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던데요. 증산도뿐만 아니라 근래 스님의 예언이 다시 집중되고 있습니다.

스님은 예언을 위한 예언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방향을 제시해주기 위해서 그런 거죠. 가령 주역하면 길흉화복을 점치는 책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주역은 점책이 아니라 소인을 군자로 만드는 것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주역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64괘에서 ‘군자’라는 단어가 괘마다 들어 있습니다. 기분 좋은 상황이라고 가정합시다. 소인은 기분이 좋아서 들뜨고 날뛰다가 패가망신으로 가죠. 군자는 그 상황에서 들뜨지 않고 더 살펴서 다음에 좋지 않은 일을 대비하죠. 주역은 이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탄허스님은 도를 통달하신 도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직 안 되는 게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승님께선 시계처럼 생활하셨죠. 도인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시계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늘 자신이 하는 일을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계속해야 합니다.

스님은 사람이 찾아오면 원고를 쓰시다가도 사람을 응대하셔요. 바쁘지 않으셔요. 보통 사람은 자기가 일하고 있는 도중에 사람 찾아오면 바쁘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은 그렇지 않아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셔서 일을 보시기 때문이죠. 스님은 손님이 해주는 이야기를 아주 재밌게 들으셔요. 어린아이처럼 박장대소하시면서 들으셔요. 하지만 손님이 돌아가면 다시 자신의 일과 삶으로 되돌아오십니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는 들었을 그때뿐이지, 법회에서 인용한다든지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으셔요. 법회나 강연에선 오로지 경전으로만 말씀을 전하시죠.

도인은 반경이 넓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활 반경이 넓지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물어보면 다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도인이 되기 어려워요. 스님한테 뭐든지 여쭤보면 다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이야기해주면 그렇게 경청하고 계신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할 일만 했으니 다른 것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다들 도인을 거룩하고 점잖은 존재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가 않아요. 도인은 오로지 자기 길만 보고 가는 존재입니다.

탄허스님께서는 인재 양성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예. 스님께서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데 최우선 목표로 두셨습니다. 역경 작업도 그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죠. 저희는 그 유지를 받들어 금강선원을 열었습니다. 불교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한자 등을 가르치고 있지요. 기본적인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저의 바람도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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