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있는 청자정과 연못. 이 연못은 박물관의 모습이 비친다 하여 ‘거울못’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은 말 그대로 ‘보물천지’다. 보물로 지정된 여러 석탑, 석등 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어 학생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박물관엔 내부뿐만 아니라 야외전시장에도 진귀한 문화재들이 가득하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섰다.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 외국인들, 연인 등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들어서거나 나서고 있었다. 박물관 야외전시장과 용산가족공원이 연결돼 있어 산책코스나 운동코스로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다.

가장 먼저 커다란 박물관 앞 잔잔한 연못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요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듯 이름 또한 ‘거울못’. 박물관의 모습이 이 연못에 비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석탑과 불상들이 모여 있는 야외전시장이 나온다. 겨울이라 아직은 누런 잔디밭 곳곳에 석탑들이 세워져 있다. 국보와 보물 등 여러 문화재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한 사찰에 국보나 보물이 한두 개 정도임을 고려해 볼 때,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은 ‘보물밭’인 셈이다. 또한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석탑이 전시돼 있어 시기에 따라 석탑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역사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탑은 ‘남계원 칠층석탑(국보 100호)’. 원래는 경기도 개성시 덕암동에 있었던 이 석탑은 처음엔 탑신만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기단부도 발굴되면서 함께 현 위치로 옮겨왔다.

2층 기단부와 7층의 탑신으로 이뤄졌으며 신라석탑 형식을 따르면서도 고려 석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같은 특징은 처마 끝에서 지붕 밑이 들려져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나 탑신의 층수가 많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제99호인 이 석탑은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명확히 남아 있어 신라시대 탑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 다음으로는 쌍탑인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99호)’.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탑처럼 2단의 기단부와 3층의 탑신부로 이루어진 탑이 일반적인 형태였는데, 이 석탑은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명확히 남아 있어 신라시대 탑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갈항사는 현재 폐허로 남았지만, 신라시대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비슷비슷하게 생긴 탑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석등이 있었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보물 282호)’으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석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3m의 쌍사자 석등은 보통 쌍사자 석등과 달리 사자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특징이 있다. 석등은 단순히 불을 밝히는 기능을 넘어서 어두워진 세상, 삶에 진리의 불을 밝히는 상징적인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세밀하게 표현된 사자의 모습이나 석등 곳곳에 조각된 그림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 고달사 쌍사자 석등. 보물 282호인 이 쌍사자 석등은 보통 쌍사자 석등과 달리 사자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 특징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외에도 홍제동 오층석탑(보물 166호), 천수사 오층석탑, 천수사 삼층석탑, 영전사 보제존자 사리탑(보물 358호), 안흥사 오층석탑 등 여러 시기, 여러 석탑들이 전시돼 있다.

석탑 전시장을 나와 불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 할머니가 불상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리고는 간절히 고개를 숙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기의 석불입상으로, 바라봤을 때 오른쪽 불상은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있으며 옷깃이 물결 모양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왼쪽 불상엔 광배가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놓여 있는 불상 앞에서 한 할머니가 고개를 숙여 기도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후 익숙한 ‘보신각종(보물 제2호)’을 마주했다. ‘에밀레종’으로 유명한 보신각종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대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지금까지 봐온 종들과 비교했을 때 그 크기가 매우 크다. 현재는 금이 가 타종을 못하지만, 종을 울리면 그 소리가 엄청날 듯했다.

1985년까지는 실제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 타종에 쓰였던 보신각종은 금이 가고 종소리가 탁해지면서 문화재 보호의 차원에서 타종을 금했다. 그리고 이후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외에도 장명등(무덤 앞을 밝히는 석등), 문인상, 석양, 온녕군(조선 태종의 7번째 아들) 석곽 등 여러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1985년까지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 타종에 쓰였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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