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솔직히 배신당한 느낌이다. 민주통합당 공천이 설마 이 정도까지 엉망이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대체로 정권을 빼앗긴 사람들의 절치부심(切齒腐心)은 하늘을 찌르기 마련이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비통한 운명은 친노인사들뿐만 아니라 야권 전반에 흐르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개심의 뿌리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얼마나 좋은 기회란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처럼 요란하게 하지 않고 선거정국만 제대로 관리해도 과반의석까지 넘볼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 선거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이 과반의석은커녕 제1당이라도 과연 가능할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새누리당은 연일 공천 물갈이와 인적쇄신의 담론을 주도하면서 ‘공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공천 탈락자들의 저항도 있고 충돌도 있다. 심지어 무소속 연대니, 집단 탈당이니 하는 무서운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공천 스토리는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적잖은 반전과 감동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떤가. 친노수장들이 방호벽을 치고 그 속에서 몇몇 486그룹의 이너서컬이 사실상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공천결과는 뻔한 수준을 넘어서 새누리당보다 더 큰 쇄신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오히려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비리 연루자들, 전·현직 국회의원들, 그리고 친노인사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괜찮은 새로운 인물들은 그야말로 손꼽을 정도다. 국민이 원했던 민주당의 쇄신, 한명숙 대표가 그렇게 외쳤던 ‘공천혁명’이 정말 이런 모습일까.

공천 스토리의 차원이 다르다

요즘 민주당 공천의 최대 화두는 어이없게도 임종석과 김진표에 집중돼 있다. 임종석 사무총장은 486그룹을 대표한다지만 이미 상처투성이다. 게다가 비리 의혹까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았다는 것을 국민은 납득하지 못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공천권을 반납해야 한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민주화 이후 가장 무능했던 제1야당, 18대 국회의 민주당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트로이 목마’라는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한명숙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이 운전하는 자동차 옆자리에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타고 있었다고 비판했지만, 그때 김진표의 민주당은 그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공천을 받았다. 이 또한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 스토리는 27세 여성 손수조가 주도하고 있다. 뚜렷한 경력도, 경험도 없는 그가 이렇게 세인의 관심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와 맞서는 27세 여성, 그 신선함과 당당함,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꿈꾸는 그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감동은 그렇게 공유되는 것이다. 설사 떨어진다 해도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다. 그게 정치의 영역이다. 반대로 임종석과 김진표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되면 유권자들이 정말 박수를 보낼까. 설사 당선되고 나서도 패배한 선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이처럼 답이 나와 있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손수조 얘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누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임종석과 김진표 얘기를 꺼내면 어떻게 될까. 판이 엎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 총선판이 그렇게 가고 있다. 엎어지기 전에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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