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스스로 수강신청을 할 수 없어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무슨 클럽활동을 할 것인지도 엄마가 결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성 친구를 사귈 때도 엄마의 승낙이 있어야 된다.

설마, 하겠지만 사실이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교육을 받기 시작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엄마의 관리를 받고 자라난 요즘 청년들 모습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거나 사회인으로 생활해야 할 때도 엄마의 영향력은 변함이 없다. 무슨 회사에 들어가라, 대학원에 진학해라, 유학을 가라, 군대를 가라, 모든 게 엄마가 판단하고 결정한다. 시집 장가갈 때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성인이 되면 제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결혼을 할 때도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서양 사람들이 보면, 참으로 희한한 광경일 것이다. 하기야 서양 사람들은 애 딱지 떼고 어른이 되는 순간, 경제적인 지원은 말 할 것도 없고 매사 스스로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대신 간섭도 덜 하게 된다는 걸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받으려 하는 헬리콥터 자식들이 직장에서는 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챌러리맨 (Child+Salaryman)이 되기 십상이다.

스펙 훌륭하고 사지 멀쩡한 소위 엘리트 사원이라는 사람이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거나 조직원과 갈등이 생기면 부모한테 일러바치겠다 하고, 부모가 나서 대신 할 말을 해 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진다. “엄마, 과장 마음에 안 들어.” “엄마, 나 그 부서 정말 짜증나거든.” 이렇게 말하면, 그 부모가 “그러니, 걱정 마, 엄마가 해결해 줄게”라며 자식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민원을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황제 대접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의 사정을 헤아리고 상대를 존중하며 자신을 낮추는 겸양을 알 리 없다. 오로지 제 이익만 따질 것이고, 제 생각과 다르면 다 나쁜 놈이라며 짜증을 낼 것이고, 제 비위에 거슬리면 재수 없다며 혀를 날름거릴 것이다. 학벌 좋고 집안 ‘빽’까지 좋아 승승장구, 무슨 큰 벼슬자리에라도 오르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짓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대할지, 뻔하다. 소통, 그런 거 필요 없고 대화, 그런 것도 엿 바꿔 먹으시오, 할 것이다.

봄 햇살 속,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종종거리며 학교에 가는 모습은 내 자식이 아니어도 눈물이 찡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정겹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내 아이한테 털끝만큼이라도 해가 있을 경우 가만 두지 않겠다며 콧김을 뿜는 부모들도 있다. 제 아이 말만 듣고선 덮어놓고 선생에게 주먹을 들이대는가 하면, 평교사는 같잖으니 교장과 상대하겠다며 교장실로 직행하는 부모들도 있다. “선생 못해 먹겠다”는 소리 절로 나올 법한 추한 꼴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된다. 내 아이 잘 되라고, 내 아이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며 밥 떠 먹여 키우고, 아이 앞에서 학교 우습다 콧방귀 끼고 함부로 선생에 대해 말하면, 그 엄마 아빠 슈퍼맨처럼 훌륭하고 멋있을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아이가 크면, 제 엄마 아빠 우습게 알고 저 역시 우스운 꼴 당한다.

반듯하게 잘 자랐다는 소리 절로 나오게 만드는 청년들을 가끔 본다.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며 밥 떠먹이고 아이 앞에서 함부로 선생에 대해 말하는 집에서는, 그런 친구 절대 안 나온다. 훌륭한 자식 만들고 싶으면, 겸손하고 배려하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 진짜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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