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제도 개선됐지만 인식 변화 없이는 ‘겉치레’
육아·가사까지… 한국여성은 ‘슈퍼우먼’
맞벌이 중 74% 여성이 집안일 도맡아
[천지일보=이솜·장요한 기자]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세계 여성의 날’을 결의했던 1910년 코펜하겐 세계 여성의 날 기념대회 선언 중 한 부분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여성의 날 덕에 현대 여성의 지위와 권리 신장의 토대가 조성됐다.
이 같은 기류에 힘입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활발한 사회·경제 진출은 물론 남성의 고유 직업이라고 여겨왔던 일자리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고 있다.
김지민(28, 여,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씨는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 가든’의 여성 주인공과 같은 스턴트우먼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영화 ‘도둑들’ 등에 출연한 김 씨는 “체력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남자를 따라가기에 벅찬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름 끈기 있게 노력하다 보면 실제 촬영에서 원하는 동작이 나오거나 내가 연습했던 부분이 잘 표현된다”며 “이럴 때 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정가에도 여풍이 거세다. 현재 거대 정당을 모두 여성 당대표가 이끌고 있으며 검찰수사 1번지로 꼽히는 강력·공안·특수부에도 올해 여검사가 배치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개선을 촉구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높다. 그 단적인 예가 일하는 기혼 여성이다.
지난해 경기도 여성능력개발센터가 기혼 남녀 142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4명 중 3명(74%) 정도는 아내가 가사, 육아를 70% 이상 전담하고 있다. 기혼 여성 상당수가 슈퍼우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건으로 인해 여성들은 점차 아이 낳기를 꺼려하게 됐고 이는 결국 저출산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정부당국에서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일과 가사를 함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취지를 살린 가족친화기업 인증제가 눈길을 끌고 있다. 건설부분의 대표적인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 받은 한미글로벌(대표 김종훈)은 여성 직원이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 90일과 별도로 석 달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현재 여성근로자들은 육아휴직은 고사하고 출산휴가 내기도 빠듯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산전후 휴가 이외에 1년의 육아휴직을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글로벌 2년차 안미영(가명, 36) 대리는 출산 및 유아휴직을 당당히 쓰고 지난해 12월 복귀했다.
안 씨는 “제도가 있긴 해도 사실 눈치가 보이는데 우리 회사는 출산·육아문제에 대해 배려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여서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이어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한 점이 다른 기업과의 차이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뿐 아니라 일하는 여성은 임금이나 근로시간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201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0.67배로 2009년에 비해 소폭 상승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도 끊임없이 여성들이 호소했던 부분 중에 하나다. 지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 노동자는 40%에 이르렀다.
(사)인천여성노동자회 김태임 상담실장은 “그동안 언론이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많이 다뤄왔고 성희롱 예방 등에 관한 교육의 증가로 여성들의 성희롱 관련 의식은 높아졌다”며 “반면 아직도 ‘그런 것 가지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나’ 등의 생각과 고용주의 압박으로 사후조치를 취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 여성들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06년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중 출산 당시 비정규직 여성 500명과 정규직 500명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여성 중 산전후 휴가를 사용한 비율은 37.4%로, 정규직 63.4%에 비해 훨씬 낮았다.
산전후 휴가 사용에 대한 직장 내 분위기에는 비정규직 여성의 20.8%만 ‘자유로운 편’이라고 응답했다. 반면 52%는 상사의 눈치를, 25.4%는 동료 눈치를 봤다고 했다. 심지어 말도 꺼내지 못한 경우도 34%나 됐다. 산전후 휴가 사용 이후 원래 직장으로 복귀한 비율은 정규직이 40.4%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14.2%에 불과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노동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면”이라며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는 동시에 좀 더 강력하고 적극적인 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