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강산엔 유독 왕의 기운이 서려있는 왕의 도시가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도시가 있다면 전라북도 전주가 아닌가 싶다. 동쪽으로 내장산을 시작해 모악산 완산칠봉 등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나의 도시를 형성해주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안에서 보면 마치 소쿠리 안에 쏙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해서 지명까지도 완전(完全) 온전(穩全)의 의미를 담아 전주(全州)라 부른단다. 이 전주는 문명과 문화 또한 호남지방에서 제일 먼저 발달한 호남의 중심지였으며, 종교인 역시 가장 많은 종교의 낙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되기까지의 많은 얘기가 있고 역사가 있으며, 그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반기고 있다.

선조인 목조대왕이 북쪽(함흥)으로 이거한 후 이성계가 태어나고 또 자라면서 나라의 큰 거목이 되고, 드디어 황산대첩에서 왜장의 목을 베는 등 왜구를 완전 토벌한 후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던 길에 선조들이 살던 본향인 이곳 전주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숙적 항우를 물리친 유방이 한(漢)나라라는 통일국가를 세운 뒤, 고향 풍패(豊沛)로 내려가 부른 대풍가(大風歌)를 빗대어, 이성계를 환영하고자 모인 친척들이 오목대(梧木臺)에서 장차 나라의 임금으로 추앙하자는 뜻으로 부르며 속내를 드러냈다. 대풍가를 들은 정몽주는 말을 돌려 만경대에 올라 고려와 마지막 우왕에 대한 충절을 담은 우국시를 읊음으로써 한 시대를 놓고 두 충신의 고뇌하는 모습을 오버랩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한 인물은 충절(忠節)의 표상이요 한 인물은 역성혁명가(易姓革命家)로 오늘날까지 묘사돼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같은 역사적 인식으로 인해 지금까지 조선의 개국에 대한 정당성이 희석될 수밖에 없었으며, 나아가 일제에 의한 한일병합 즉, 경술국치(庚戌國恥)에 대한 당위성에 일정부분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오늘날 수많은 역사왜곡의 장본인들이 바로 친일파라는 점과, 그들에 의해 정립된 역사관이 식민사관이 되어 오늘날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고려말은 권문세족, 공민왕, 신돈, 우왕 등으로 이어지며, 특히 종교와 결탁해 빚어지는 부패와 타락의 극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글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부패하고 타락한 지난 구시대는 보내야 하고, 새롭게 열리는 새 시대는 기쁘게 맞이하라는 시대적 격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조선의 개국은 역리가 아니라 순리요 섭리요 이치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결국 이성계는 역성혁명가라는 왜곡된 굴레를 벗고 새 시대의 선구자라는 역사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점이다. 역성(易姓) 즉, 왕의 성이 바뀌는 것은 천명이라는 사상과 함께 ‘임금은 하늘이 낸다’는 말을 유념해야 한다.

‘해가 일찍 뜨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조선(朝鮮)’은 그야말로 이 민족의 정통성을 잇는 국호라는 점에서도 숙연해진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또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게 된 배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이 있다. 이 또한 전북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馬耳山)이다. 이곳에는 은수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고 태극전이 있다. 이 태극전 안에는 ‘단군성조’가 모셔져 있고, 그 옆엔 천신으로부터 이성계가 하늘의 금척을 받는 장면이 묘사돼 있는 ‘몽금척도’가 있다. 그리고 외벽엔 바로 ‘일월오봉도’가 그려져 있다. 과연 이 그림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을까.

마이산 입구에는 이산묘(耳山廟, 이성계가 마이산에 들어설 때 말을 매어 뒀던 곳이며, 단군성조·태조·세종·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점, 조선시대 명신·거유를 모신 영모사, 구한말의 우국지사와 의병장 33위를 모신 영광사로 이뤄져 있는 곳)가 있다. 즉, 전주와 함께 이곳 마이산 역시 조선의 성지나 다를 바 없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이제 진정 깨달아야 할 것은 일월오봉도의 의미다. 이 일월오봉도는 과연 완성된 그림일까. 아니면 아직 다 채우지 못한 미완성의 그림일까. 그림은 세 등분으로 나뉘어 이해할 수 있는데, 일월과 오봉과 월랑이다. 이는 삼재 즉, 천지인 사상임을 엿볼 수 있다. 인의예지신의 정신으로 만백성을 축복하라는 하늘의 뜻을 가진 한 왕(王)이 나타나 이 그림 앞에 설 때 비로소 이 일월오봉도의 그림은 완성되는 것이며, 진정한 조선의 왕이 세워지는 것이라는 오묘한 뜻을 이 일월오봉도는 우리에게 예시해 왔던 것이다. 바로 임금 ‘王’자 속에 그 비밀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성계가 금척을 받고 세운 조선은 진정한 조선이 아니요, 장차 하늘의 뜻대로 이 강산에 나타날 나라요, 조선 왕조의 후손 중에 우주의 섭리를 깨달은 진정한 왕이 출현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음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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