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아스 카네티(1905~1994)가 35년간 군중현상을 연구해 내놓은 결과물인 <군중과 권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르는 것에 의한 접촉보다 인간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카네티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 아니 세계 그 자체로부터 오는 죽음의 위협은 우선 ‘접촉 공포’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접촉에 대한 혐오감은 우리가 사람들 사이를 걸어갈 때도 사라지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음식점에서, 기차나 버스에서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방식은 이 두려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 곁에 아주 가까이 서서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접촉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밀집된 군중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나와 구분되지 않는 타자와 접촉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중 속에 놓이는 순간 인간은 닿는 게 두렵지 않게 된다. 이상적인 경우에 거기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어떠한 구별도 없으며 성별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민 자가 곧 밀린 자요, 밀린 자가 곧 민 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갑자기 모두가 한몸이 되어 행동하는 것 같아진다. 군중이 서로 밀착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원초적인 ‘접촉 공포’를 떨쳐버리기 위해  군중을 형성하며, 군중이 무한 증식을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라는 것이다.

새 봄을 맞아 스포츠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스포츠 시즌이 돌아왔다. 프로축구가 지난 2일부터 전국 각 축구전용 구장 등에서 본격적인 경기에 들어갔으며 프로야구가 오는 17일부터 정규리그에 앞선 시범경기에 돌입할 계획이다. 한겨울 동안 잔뜩 움츠렸던 프로축구 팬들은 그라운드에서 질주하는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지켜보며 거친 숨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광하며 막 꽃망울을 터뜨릴 봄꽃마냥 환한 모습이다. 관중석은 일반적으로 그라운드처럼 겨루는 홈 경기팀과 원정 경기팀 관중들이 분리돼 앉게 돼 있다. 하지만 어느 팀이건 선수들이 골을 터뜨리거나 멋진 기량을 발휘하면 아낌없는 박수세례를 보낸다.

관중들은 남녀노소, 돈 많고 적음을 가릴 필요도 없고 가리지를 않는다. 학업의 짐을 덜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청소년 학생, 아이들과 주말나들이로 경기장을 찾은 가족, 연인과의 데이트를 겸한 젊은 커플, 예전의 경기기록까지 꼼꼼히 챙기며 즐기는 중년의 매니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벽을 허물고 새로운 팬층을 형성하는 젊은 여성들 등 관중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이들은 스포츠가 좋아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공유하면 그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없다. 지난해 프로축구의 승부조작 사건에 이어 올 초 불거진 프로배구와 프로야구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어수선한 프로스포츠계와는 달리 관중들의 가슴은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다. 스포츠 관중에는 심각하게 대치하는 여‧야의 정쟁도 없고, 좌‧우의 대립도 없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과 분노도 없다. 흙탕물로 고여 있고, 진흙뻘이 널려있는 정치, 경제, 사회의 도떼기 판과는 천양지차 다르다.

어찌보면 대규모 군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스포츠는 대표적인 군중현상으로서 전쟁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의 사례를 역사 속에서 볼 수 있었다. 가깝게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천만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돼 거리응원을 펼쳤고, 이라크 전쟁의 와중에서도 미국 병사들이 전선에서 슈퍼볼을 TV로 시청하기도 했다. 멀게는 콜로세움에서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즐기는 로마 시민들을 볼 수 있다.

관중도 이제 많이 진화하고 발전했다. 그냥 구경만 하고 즐기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자기 일처럼 고민하는 능동적인 관중으로 바뀌었다. 관중들이 경기장의 또 다른 볼거리 콘텐츠까지 생산하는 역동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프로스포츠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관중이 권력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군중과 권력을 동일시한 카네티의 해석에서 볼 수 있듯이 스포츠 관중도 권력이 된 세상을 맞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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