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우리강산

경상남도 남해 ‘금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지대 금산. 금강산을 빼닮았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남해금강(南海金剛)이라고도 한다. 금산은 원효대사,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진 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신하 서복을 동쪽 끝 나라에 보냈다. 그 서복이 지나간 흔적인 서불과차를 찾아봤다.

 

‘그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남해 금산
원효대사․이성계․진시황의 신하 서복이 남긴 전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지대 금산. 금강산을 빼닮았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남해금강(南海金剛)이라고도 한다. 금산은 원효대사,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본래 이름은 보타산인데 신라 말 원효대사가 서광이 비추는 모습을 보고 보광산(普光山)이라고 불렀다.
 
태조 이성계는 젊은 시절 개국의 뜻을 품고 백두산과 지리산의 산신을 찾았다. 그러나 두 산신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남해 보광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며 ‘임금이 되면 이 산에 비단을 두르겠노라’고 산신께 약속을 했다. 훗날 그 기도의 효험으로 왕위에 오른 그는 산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심했다.

이때 한 신하가 “비단은 경제적 부담도 큰 데다 금세 더렵혀지니,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이후로 이 산을 금산(錦山)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금산은 해발 705m로, 걸어서 1시간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남해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보다 80m정도 낮다. 산의 가치를 어찌 땅에서 기준 잡은 높이로 말할 수 있으랴. 고도가 높지 않아도 금산을 오르는 이들은 그 가치를 단번에 깨닫는다.

금산은 남해12경 중 제1경으로 꼽히며 국가명승 제39호로 나라가 정한 귀한 재산이다. 금산 입구에서 산행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1시간이 채 못 되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동굴이 나온다. 해골의 두 눈 같아 으스스하기도 하고, 굴속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괜스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쌍홍문’이다.

금산 정상에 있는 문장암에는 조선 중종 실학자 주세붕 선생이 쌍홍문을 보고 감탄하여 쓴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는 글귀가 있다. ‘홍문을 지나 금산에 올랐다’고도 하고 ‘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은 최고의 명산이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쌍홍문을 시작으로 금산의 기묘한 바위들과 제각각의 전설들은 금산 38경을 만들어냈다. 산을 오르며 펼쳐진 장관을 보고 있노라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한 소절 ‘그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이라고 한 작사자의 마음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비단 금강산에서만 조물주의 작품이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알고 보면 삼라만상에 신성이 깃들여있는 것을.

금산 38경을 숨은 그림 찾듯이 제대로 마음에 담아보고 싶다면 인터넷에 올라온 금산 사진을 한 번이라도 보고 갈 것을 제안한다. 처음 오른 산행이라면 천지가 기묘한 바위들이라 찾는 바위가 어떤 바위인지 분별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금산 38경 중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서불과차 전설이 전해지는 금산 상주리 야산 기슭의 거북바위였다. 금산은 대체로 산세가 아담하고 험하지 않는 편이지만 거북바위를 찾아가는 길만큼은 평탄치 않다. 산행이 금지돼 원천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불예방과 자연보호 차원으로 길목을 폐쇄했다. 하지만 답사의 목적 중 하나가 서복이의 행적을 찾아 나선 것이니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반신반의하며 사람들이 찾지 않은 그 길을 찾아 나섰다. 마치 불로초를 찾기 위해 낯선 땅을 밟았던 서복이의 일행이 된 심정으로 말이다. 동화책 ‘잭과 콩나무’에서 콩나무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르내렸던 잭처럼 겨우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바위 사이를 밧줄을 타고 내려가야 할 때도 있었다. 온통 회색빛으로 뒤덮인 ‘사람주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지날 때는 음산하기도 했다.

정상에서 한참을 내려가도 바위가 나오지 않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을 무렵, 드디어 거북바위를 발견했다. 불로초를 찾은 것은 아니지만 2300년 전의 인물 서복을 만난 것 같아 마냥 반가웠다.

거북바위에 새겨진 그림문자가 과연 서불과차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문자해독의 논란 여부는 뒤로하고,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이 영생불사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신하에게 지시한 이야기에 집중해 보자. 영원히 살 수 있게 하는 약초 불로초라니…. 조금은 엉뚱하다.

하지만 죽지 않고, 늙지 않기를 바라는 ‘생명’에 대한 애착은 현대인들에게도 유효한 것이니 우리 또한 고민해볼 일이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는데 과연 하늘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할 때는 없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조선 중기 유학자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 내용 중 ‘천택지인 삼풍지곡 식자영생 화우로(天擇之人 三豊之穀 食者永生 火雨露)’ 즉, ‘하늘이 택한 자가 주는 세 가지 양식 불, 비, 이슬을 먹어 영생한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진시황 명령 따라 떠난 동도행(東道行)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시황이 도교의 성지인 낭야를 둘러볼 때 일이다. 황제가 동해를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신선들의 생활이 환영으로 나타났다. 서복은 “그곳(동쪽)은 신선이 머무는 곳으로 해중에 있는 삼신산으로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다. 선인이 살고 있는 그곳에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고 황제에게 고했다. 이를 계기로 불로초 찾기가 시작됐다.

불로초를 찾아 떠나기 전, 서복은 집촌인 서복촌을 찾아 여러 친척과 식구들에게 “황제의 명을 받고 선약(仙藥)을 찾아 떠난다.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수 없다”면서 “그때는 황제가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니 나와 관계있는 서씨 성을 가진 자는 멸문지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고향을 떠나 서씨 성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서복의 말에 서복촌 사람들은 마을에서 떠나 그 성을 내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가족을 뒤로한 채 서복은 황제에게 3천여 명이 탈 수 있는 배와 동남동녀 오백 명, 오곡과 종자, 의약품과 공인, 필요한 생활물품을 요구했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서복 일행은 산둥 성 낭야에서 출항해 지금의 경남 남해군 상주면 금산에 도착했다. 산에 오르기 전 그는 삼신제(三神祭)와 천제(天祭)를 정성 들여 모시고 불로초를 반드시 구할 수 있도록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함께 온 동남동녀와 하인을 동원해 금산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신초는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서복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진시황에게 “봉래산 신선에게 선약을 구할 수 있었으나 섬 주변에 큰 상어 떼가 있어서 도저히 봉래산에 접근할 수 없었다”며 “상어를 사살할 활과 활을 잘 쏘는 궁수를 보내 달라”는 거짓 보고를 하게 됐다. 진시황은 서복에게 활과 궁수를 보냈다.

한편 서복은 금산을 거점으로 부족을 형성하고 남해 주변의 바다를 지켰다. 또한 몇 척의 배를 띄워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도록 했다. 이 와중에 일행은 제주도를 발견하고 금산을 떠나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 제주도로 향했다.

서복 관련된 지명 어디 있나
서불이야기는 설화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 남해 암각 ‘서불과차’는 가로 7m, 세로 4m 가량의 평평한 바위 위에 1m×0.5m 정도의 각자가 새겨져 있다. 제주도 서귀포 정방폭포에선 ‘서불과지(徐市過之)’ 곧 ‘서복이 이곳을 지나다’라는 글이 고대 그림문자로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됐을 때 그 글자를 탁본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찾았을까. 불로초를 캐러 한라산에 간 서복은 약초를 구하지 못하고 신선의 열매, 시로미를 얻은 후 서쪽(중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 서귀포(西歸浦)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됐다. 또 다른 설도 구전되고 있는데 서복이 서해를 거쳐 조천포에 배를 대고 시로미를 얻은 후 서귀포를 거쳐 일본 규슈(九州)로 건너갔다는 내용이다.

서복이 남긴 글은 곧 그의 이동 경로다. 남해 양아리(금산) 각자와 남해도 서리곶, 서귀포 정방폭포의 각자, 여수 동도리꽃 전설, 거제도 해금강의 해동한국과 소매물도의 신선전설, 옹진군 영흥도 양로봉 화상문자, 전남 구례의 서시천(徐市川), 전남 여수시 남면 연도리 까랑포 해안 절벽 등이 그 예다.

 

▲ 경상남도 남해 금산 '장군바위서 바라본 다도해' ⓒ천지일보(뉴스천지)

 

 

▲ 경상남도 남해 금산 '쌍홍문' ⓒ천지일보(뉴스천지)

 

 

▲ 경상남도 남해 금산 '서불과차' ⓒ천지일보(뉴스천지)

 

 

▲ 경상남도 남해 '금산 전경', 보리암이 왼쪽에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영상취재: 손성환, 글: 박미혜 기자, 사진: 최성애 기자, 내레이션: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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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남해 금산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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