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교복’이 너무해!”… 한 벌에 35만 원 ‘속타는 학부모’
교복값 관련 긴급 포럼 개최

[천지일보=특별취재팀] 교복 구매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교복 업체 본사, 대리점, 교사, 학부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복잡한 구조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의 갈등 속에서 정작 교복을 입는 아이들의 권리는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 이상, 거대한 담론은 필요 없다.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 사회의 울림을 일으켜야 하는 시기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천지일보’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그 답을 더듬을 수 있었다.

본지는 24일 오전 서울 본사에 고등학생·학부모·시민단체장을 긴급 초청해, 교복 구매 논란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참석자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하며 논란의 근본적인 문제인 교복을 계속 입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논했다. 이어 ▲적정 교복 가격 입법 추진 ▲교복처럼 입을 수 있는 생활복 착용 ▲입학 후 상당 기간이 흐른 후 교복을 구매하는 방법 등 현실적인 대안을 내놨다.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일단 교복은 입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서울 여의도여고 3학년 이현진 양은 “교복을 입는 게 나아요. 사복을 입으라고 하면 교복에서 브랜드 따지듯이 메이커 때문에 애들 사이에서 우월 관계가 생길 것 같아요”라고 운을 뗐다.

이 양은 “교복을 입을 때에도 짧게 줄이는 얘들은 힘이 있어 보이고 막 다른 아이들 무시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고요, 길이를 안 줄이면 좀 떨어지는 애로 구별이 돼요. 학교에서 못하게 한다고 해도 하는 애들도 있고, 생활지도 선생님이 바뀌면 또 길이가 달라져요. 똑같은 복장인 교복만 놓고도 이러는데, 사복을 입게 되면 친구들끼리 더 이질감이 생길 걸요”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2학년 박주원 양은 “저도 찬성이에요. 사복으로 멋을 내는 것보다 지정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에요”라고 밝혔다. 박 양은 “또 애들한테는 교복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게다가 옷 고르는 스트레스도 없고… 제가 오전에는 교복을 입고, 오후에는 사복을 입을 수 있는 학교를 다녔었는데, 한 달이 지나서 옷 고르기 귀찮고 하니까 애들이 알아서 오후에도 교복을 입었어요. 특히 사복을 사더라도 여학생은 옷에 어울리는 신발이라든지,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교복이 학생이 입기엔 제일 나은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 양의 어머니인 박계순 씨는 “수학여행 가려면 애들이 몇 날 며칠 옷을 사러 다녀요. 그래서 엄마들이 수학여행을 제일 싫어해요. 그런데 교복을 없애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해 옷 사러 다녀야 할 걸요. 그거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죠”라고 전했다.


최정희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중앙공동대표도 “교복 위에 걸치는 ‘노스페이스’만으로도 문제가 대두되는데 사복을 입히면 어떻게 될지 염려가 돼요”라고 거들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고진광 학사모 교복값 대책위원장은 “사복 문화가 잘 정착된 학교도 제법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고 비싼 메이커는 입지 않아요. 교복 착용 폐지를 고려해 봐야 합니다. 더욱이 교복을 입히면 아이들을 더 잘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해요”라고 밝혔다.

◆“교복값 때문에 등골이 휜다”
이날 참석자들은 ‘교복값이 너무 비싸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공동구매를 하면 보통 23만 원이고 공동구매가 끝나면 33만 원까지 올라가는 교복 때문에 등골이 휩니다(박계순 씨)” “셔츠를 추가하고 바지를 추가하면 거의 35만 원이에요. 비싸도 너무 비싸요(최정희 공동대표)”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이들의 주장대로 실제 교복값(기본세트)은 공동구매 시 23~24만 원, 개별구매 시 33~35만 원에 육박했다.

최근 본지가 입수한 서울시 모 여고의 올해 교복 구매가 리스트를 살펴본 결과, 공동구매를 할 경우 재킷 7만 7000원, 블라우스 3만 3000원, 조끼 3만 원, 스커트 4만 5000원, 카디건 4만 7000원으로 기본 한 벌의 가격이 23만 2000원이었다. 개별구매 시에는 재킷이 12만 원, 블라우스 4만 5000원, 조끼 4만 5000원, 스커트 6만 원, 카디건 6만 5000원으로 33만 5000원을 줘야 한 벌을 맞출 수 있었다.

여기에 중·고등학생의 활동량을 감안하면 여벌을 더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위 가격에 10만 원이 더 붙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등골교복’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키가 크거나 몸이 뚱뚱하거나 너무 마른 학생은 몸에 맞는 교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복 업체 본사나 대리점이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거의 표준 사이즈에 맞춰 교복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KT edui 비교과연구소 이섬숙 소장은 “키가 186cm나 되는 이런 덩치 큰 아이들은 공동구매를 통해선 교복을 못 사요. (업체에서) 얼마나 수요가 나갈지 모르니까 표준형 체격에 맞춰버려요”라며 “마르거나 키가 작거나 뚱뚱한 아이는 교복을 찾기 어렵고 그런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덤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거금이 듭니다”라고 진단했다.

이후 참석자들은 교복 업체의 횡포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최정희 공동대표는 “대형 업체 4사 중에 원단 물량을 맞출 수 있는 곳이 한 곳밖에 없어 학교운영위가 그곳을 공동구매처로 선정하려고 하자, 나머지 3사 대리점 사장이 방해를 했어요. 그때 학부모와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정말 말도 못해요”라면서 “어른들의 횡포 때문에 교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라고 말했다.

고진광 위원장은 “대형 4사가 공동구매를 추진하거나 변형교복을 못 입게 한 모 학교 교장을 협박한 일도 있었죠. 이처럼 매년 교복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교복업체의 경우 학교가 배정되고 난 후 10일 만에 교복을 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경쟁을 하면서 횡포를 일삼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라고 진단했다.

교복이 출시될 때부터 몸에 딱 달라붙는 사이즈로 나오는 것과 교복을 구성하는 옷이 너무 많은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현진 양은 “아이들이 치마를 다 줄여서 입으니까 ‘나올 때부터 짧게 만들자’ 이렇게 정하면서 치마 아랫단에 마크를 달아 교복을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생활지도 선생님이 바뀌면서 치마가 짧으니까 늘려오라고 하시는데,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보니 새로 사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거 때문에 부모님들도 속이 많아 타셨어요”라고 설명했다.

박주원 양은 “요즘 교복은 처음부터 짧게 나와요. 늘리려면 다 수선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최정희 공동대표는 “우리나라는 교복 구성 가짓수가 너무 많아요. 블라우스에 조끼에 재킷에, 그거 때문에 값도 비싸지고 교복 입는 시간이 8~10분은 걸려요. 거기에 머리 말리고 하면…. 아이들은 아침에 이불 속에서 5분만 더 있어도 행복한데, 제대로 챙겨 입으려면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해요. 교복을 좀 간편하게 입으면 안 되나요? 왜 굳이 교복을 정장처럼 갖춰 입게 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교복값 조정 위해 정부 나서야”
참석자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국회가 나서서 교복값을 조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고진광 위원장은 ‘반값 교복’ 입법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상한가를 정해 15만 원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입법을 통해 교복값을 규제해야 해요”라고 밝혔다.

최정희 공동대표는 “교복 업체 본사의 횡포가 정말 심각해요. 그걸 잡을 수 있는 것은 학부모 단체나 시민 단체가 아니죠. 이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키는 정부가 쥐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뒷짐이나 지고 있다가 상황이 터지면 ‘뭔가 하겠다’ 이러는 게 문제에요”라고 말했다.

교복처럼 입을 수 있는 ‘생활복’을 입자는 의견과 신입생의 경우 입학 후에 하복부터 입히자는 의견도 개진됐다.

이에 대해 박계순 씨는 “폴라티처럼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값도 싸고, 불평도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섬숙 소장도 “옷이 불편하니까 단추를 풀고 다니는 일도 있고… 폴라티나 면티에 재킷만 걸치고 스커트도 간편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했다.

고진광 위원장은 “학교장이 신입생 안내서를 통해 입학식에 교복을 입고 오라고 해요. 그럼 10일안에 사 입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면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죠. 하복부터 입히면 그 시간 동안 충분히 논의를 해서 업체 선정 등에 더 공을 들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최미숙 학사모 상임대표는 근본적으로 교복 선정 과정에 아이들과 학부모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사실 교복 선정에 교육과학기술부가 들어오고 교육청이 들어오고 학부모 단체가 들어오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이들은 큰 틀에서의 정상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거고, 단위학교와 교복사가 대화를 하는 게 맞아요. 교과부 등이 교복을 선정하는 거까지 다 일일이 개입할 수는 없어요. 어떤 교과서가 맞는지 학부모운영위가 심의하듯이 교복도 학부모와 학생이 충분히 심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교육청 “자율적인 사안”… 교복업체, 답변 회피
학생·학부모·시민단체의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시교육청은 교복값 안정을 위해 학교 측을 지원하거나 권고할 수는 있지만 이를 강제적으로 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책임교육과 최병갑 과장은 “학교 공동체 구성원 간에 민주적으로 합의하면 자율적으로 교복 관련 규칙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복을 안 입는 것도 가능합니다”라며 “다만 가격 조절과 같은 부분은 정부나 교과부 차원에서 관여해야 할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

최 과장은 문제제기가 들어오거나 제보를 받게 되면 감사를 통해 시정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시교육청은 지난해 제보를 받고 서울 일부 중·고교가 참여해 만든 공동구매 연합회가 3년에 걸쳐 교복업체와 담합, 비싼 교복을 구매하도록 한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이에 교육청은 지난달 해당 학교와 지역교육지원청에 ‘기관 경고’ 처분을 내렸다.

한편 대형 4사는 교복값 논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본사도 안정화를 위해 여러 노력을 하는 중이고, 내부에서 회의도 진행하고 있지만 지금 현재 상황을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교과부라든지 교복 시장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겠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엘리트 측은 이 사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합의했다는 말로 답변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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