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법원이 정수장학회 설립과정에서 강압에 의해 장학회 주식을 증여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시효가 지나 반환 청구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염원섭 부장판사)는 故 김지태 씨의 장남 영구(74) 씨 등 유족들이 재단법인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낸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4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국가가 김 씨를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로 장학회 주식을 기부하는 내용의 승낙서에 서명을 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다만 강박의 정도가 김 씨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무효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안에 대한 법률행위의 성격을 ‘무효’가 아닌 ‘취소’로 판단하면서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 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이를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도 과거 군사정부가 자행한 강압적 위법행위에 대해 김 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김 씨가 구속됐다가 석방된 1962년 6월 22일로부터 10년이 지났기에 역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 통치기간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인 셈.

박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한자씩 따 조직한 정수장학회는 지난 1958년 김 씨가 만든 부일장학회를 1962년 헌납 받아 설립된 5.16장학회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와 MBC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지난 2007년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김 씨의 재산 기부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김 씨 유족들은 국가와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정수장학회로 강제 헌납 당했다”며 “이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무효에 해당한다. MBC와 부산일보 주식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7년 6월 “1962년 중앙정보부 관계자 등이 김 씨에게서 재산을 헌납 받은 것은 공권력에 의한 강요였다”며 “국가는 토지와 주식을 돌려주고 원상회복이 어려울 경우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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