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계획으로 건립되고 있는 대성당 터. 현재는 철골구조와 돌 몇 개만 놓여 있어 황량하고 쓸쓸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 건물 하나 없는 드넓은 대지는 탁 트인 시야에 시원하면서도, 커다란 돌과 철골구조 몇 개만 드문드문 놓여 있어 황량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넓게 펼쳐진 벌판 앞쪽에 ‘한민족100년계획천진암대성당건립’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어떠한 곳인지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곳은 천진암대성당 부지로 한국천주교회 창립 300주년을 맞는 2079년까지 100년 계획으로 성당이 건축되고 있는 곳이다. 100년이라니…. 입이 벌어진다.

대성당은 15만여㎡ 넓이에 1층 2만 2000석, 2층 1만 1000석, 총 3만 3000석 규모로 유교 서원 형식의 외벽, 불교의 대웅전 지붕, 천주교 성당의 내부 구조를 종합해 설계됐다. 유불선이 한 건축물에 녹아 있는 셈이다.

완공되면 멋진 모습을 자랑할 테지만, 지금은 거의 지어진 게 없어 대지를 도화지 삼아 상상해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 대성당의 ‘어머니 성당’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성당이 건립되는 동안 사용되는 성모경당. ⓒ천지일보(뉴스천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빽빽한 푸른 나무들 뒤편으로 두 개의 건물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성모경당, 그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박물관이다.

성모경당은 대성당의 ‘어머니 성당’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성당이 건립되는 동안 사용되는 성당이다. 안내에 따르면 천주교인들이 나라의 어려움 극복과 겨레의 통일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그 뒤편에 자리한 박물관은 아직 개방 전이라 내부는 둘러보지 못하고 담 너머로 외관만 살펴볼 수 있다. 성지 관계자에 따르면 박물관에는 한국 천주교 창립 성조 5명과 정약용 선생의 친필을 비롯해 관련 유물 등이 전시될 예정이며, 올 가을쯤 개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 한국 천주교 창립 성조 5명과 정약용 선생의 친필을 비롯해 관련 유물 등이 전시될 박물관. 올 가을쯤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박물관을 나서 다시 대지를 가로질러 반대편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강학회 터와 천주교 창립 5명의 성조들이 묻혀 있는 묘역을 가보기 위해서다. 묘역까지 앞으로 500m가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보고 있으니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서울에서 한참을 달려, 입구에서 한참을 걸어 올라왔는데 또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외국인이 자주 드나드는 포구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도성이 아닌 이처럼 깊은 산골에서 천주교가 시작됐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등이 1779년부터 5년간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공동 신앙생활을 한 강학회 터.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렇게 오르기를 몇 분여, 강학회 터가 나왔다. 지금은 흰 눈밭에  강학회 터임을 알리는 비와 겨울나무들만 자리하고 있지만, 230여 년 전 이곳에선 젊은 선비들의 열띤 강의와 토론이 이어졌으리라.

원래 강학회는 유교‧성리학적 가르침을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이벽이 ‘서학’을 전하며 서양의 학문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천주교라는 종교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조선 말 실학 연구와 강의도 이어졌다.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권철신, 이승훈, 정약종 등이 있다. 이들은 1779년부터 5년간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공동 신앙생활을 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천주교의 출발이다.

조금 더 오르니 맑은 물소리와 함께 묘역이 보였다. 올라오는 길에 계곡을 봤을 땐 꽁꽁 얼었는데 물소리가 들려 의아했다. 가까이 가보니 바위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에서 물이 흘러 나온다. 안내판에 ‘천진암 빙천수’라고 소개돼 있다.

▲ 천진암 빙천수. 바위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물이 흘러나온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샘물은 천주교 창립 성현들이 이곳에서 생활할 때 마시고 세수하던 샘물로, 영하 20도를 내려가는 한 겨울에도 얼지 않고, 무더운 여름철엔 매우 시원하다고 한다. 방문객들을 배려해 마실 수 있도록 바가지도 몇 개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난 돌계단 끝에는 다섯 개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천주교 창립 성조인 광암 이벽, 만천 이승훈, 선암 정약종, 직암 권일신, 녹암 권철신의 묘다.

이들 중 대부분은 천주교 박해 동안 순교 당했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수많은 한국 천주교인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열정과 희생이 오늘날의 천주교를 일군 것이다.

▲ 천주교 창립 성조 5명 광암 이벽, 만천 이승훈, 선암 정약종, 직암 권일신, 녹암 권철신의 묘역.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밖에도 이벽의 독서터,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 성조들의 직계 가족 묘역이 성지 내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 성지는 아직도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완벽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또한 당시의 모습 곧 ‘과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때문에 겉모습만 훑어본다면 특별한 의미가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로 돌아가 5명의 성조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차근차근 둘러본다면 더욱 깊은 의미를 얻어갈 수 있을 듯하다. 한국 천주교를 글 대신 체험을 통해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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