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지어음까지 요구” vs “대리점 편의 봐줘”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양측이 작성한 기본 계약서 제15조는 담보물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데, 대상은 본사가 정한 기준에 의한 실담보가치가 총채권액의 40% 이상에 해당하는 부동산, 보증보험 증권, 예금질권, 현금 등이다.

대리점 측은 이 같은 담보 설정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대리점은 “본사는 다른 의류업체에 비해 과도한 부동산 담보를 확보하고도 어음은 물론 백지어음까지 요구하고 있다”면서 “여기에 더해 일부 대리점에 매출채권양도와 통장까지 요구하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과도한 담보 설정은 출고 정지와 연계돼 ‘착취’ 및 ‘관리’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본사가 요구하는 수준의 담보보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본사는 상품을 출고시키지 않는데 이 때문에 대리점이 교복 판매시기를 놓쳐 매출이 감소하고 재고 채무가 크게 증가하는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출고시기를 놓치면 1년 영업 전체를 망치기 때문에 본사가 상품을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새로운 담보를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대리점 측은 말했다. 특히 최악의 경우 출고 지연 때문에 발생한 재고로 인해 갚을 수 없는 채무가 발생, 일방적인 계약해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본사는 “공급받는 상품 총액의 40% 이상으로는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조건이 타 업체보다는 낫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서 “상품을 판 이후에는 2개월에 걸쳐서 70%를 회수하며 나머지 30%는 다음 시즌까지 미회수 채권으로 남겨둔다. 대리점주가 유리할 수 있도록 운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본사는 수십 년간 교복 사업을 해왔고 노예계약이나 대리점을 강하게 압박한다든지,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분들을 확실하게 지원하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 논란의 본질 ‘지배종속 관계’

이번 논란의 본질은 양측의 지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데 있다.

본사에서 상품을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그대로 1년 영업을 포기해야 하는 게 대리점의 뼈아픈 현실이다. 사실상 양측은 ‘지배종속’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관계로 설정되다 보니 본사가 부당한 요구를 해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관계에서 작성된 양측의 기본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제12조와 제15조 외에도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조항이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6조는 ‘물가의 급격한 변동, 기타의 사정변경이 발생할 경우 양측의 협의에 따라 계약의 조건을 변경할 수 있고, 변경 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본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함으로써 계약해지권이 본사에게 전속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역시 불공정 논란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더욱이 ‘상품대금의 지불은 상품 인도 후(개별 계약서에는 상품 인도받은 ‘즉시’) 현금으로 전액을 본사에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10조는 일반적인 대리점 판매 계약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판매 후’에 대금을 지불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받는 즉시 돈을 본사에 입금하도록 하는 이 조항에는 “공급 즉시 상품의 소유권과 재고 부담은 대리점에게 돌아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한마디로 한번 회사가 정해준 대로 납품을 받으면 책임은 대리점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대리점 계약은 대리점이 본사 대신 영업과 판매를 해주면서 일정한 이윤을 남기고 상품 재고 처리 등은 본사가 책임을 지는 구조로 돼 있다.

이 계약서와 관련해 S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대리점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이라며 “이 기본 계약서의 경우 여러 케이스에 똑같이 적용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약관으로 봐야 한다. 약관규제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밝혔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