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대표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완당서첩’과 원교 이광사의 ‘원교서법’ 친필서첩이 발굴됐다. (사진제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친필서첩’ 동시 발굴… “이례적”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친필서첩이 발견됐다. 노론과 서론으로 대립 관계였던 두 서예가의 친필서첩이 나란히 발견된 것은 드문 일이다.

최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 연구소인 동양문고 자료를 조사하던 중에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친필서첩을 발견했다.

민족문화연구원 측은 “두 서첩은 동양문고 목록에는 올라와 있지 않지만 귀중본으로 분류돼 일반 고전서적과는 별도로 보관돼 있었다”며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던 두 사람의 서첩이 같은 청구기호로 묶여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전했다.

노론이었던 김정희와 소론이었던 이광사는 서로 적대 관계에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서로에게 충고 아닌 비난의 말을 퍼붓기 일쑤였다.

“원교 이광사가 쓴 전남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대웅전(大雄殿) 편액(扁額)을 관람하며 지나쳤다. 이는 조송설(조맹부, 원나라의 서예가)체의 형식 속으로 타락했으니 아연해 웃었습니다.”

이는 추사 김정희가 전남 대흥사의 초의(草衣) 선사에게 보낸 편지로, 내용을 통해서도 이들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광사는 무려 22년간 유배생활을 하는 등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유배지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서맥(書脈)을 계승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를 완성했다.

김정희는 말년에 이광사와의 라이벌 관계를 인정했다. 이광사가 쓴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의 서체를 담은 새 현판을 달았다. 하지만 8년 뒤 김정희는 천은사에 다시 방문해 “이광사의 글씨가 더 훌륭하다”며 지금의 현판을 달게 했다.

이번에 발견된 두 서예가의 친필서첩은 ‘완당서첩(阮堂書帖, 김정희)’과 ‘원교서법(圓嶠書法, 이광사)’으로,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됐다.

동양문고 자료조사에 참여한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발견된 이광사의 ‘원교서법’은 조선후기 사회의 정신사에 큰 영향을 미친 주역 해설서 ‘참통계’를 해서체로 쓴 것이다. 책은 원교의 서체 연구는 물론 주역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동양문고는 일본 최대의 동양학 연구도서관으로, 이와사키 히사야가 1942년 설립했다. 일본 국보 5점과 중요문화재 7점을 포함해 95만여 책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한국 고전서적 자료는 약 2천 종에 이른다.

심 교수는 “(동양문고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문인들이 주고받은 글을 묶은 ‘화동창수록’ ‘연암집’ 필사본 등 귀중본들이 많았다”며 “지속적으로 자료 조사를 진행하면 앞으로 더 많은 자료들이 발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화연구원의 이 연구 사업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으며, 2014년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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