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남산에 남아 있는 봉수대(사진=김현진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횃불 ‘봉(烽)’, 연기 ‘수(燧)’ 봉수(烽燧). 밤에는 횃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낸다고 해 ‘봉수’라고 불렸으며, 그 일을 수행하던 기구가 ‘봉수대’이다.

변방 높은 산봉우리에 세워진 5개의 화두(火竇, 불을 피워 바깥으로 비치게 하는 구멍)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두수(數)에 따라 나라 안팎의 상황을 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씨가 제대로 피어올라 낮에는 활활 타오르고, 밤에는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라야지만 상황이 잘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봉수신호는 평소에는 1개의 홰를 피워 이상 없음을 표시했고, 2개의 홰는 적이 나타났음을, 3개의 홰는 적이 경계에 접근했음을, 4개의 홰는 경계를 침범한 상태, 5개의 홰에서 모두 봉화되면 외적과 접전 중인 것을 의미했다.

초기 봉수제도는 세종대왕 때부터 시작됐는데, 봉수대에 3인 1조로 구성된 봉졸들을 배치하고 주야로 정찰하며 5일씩 교대하게 했다.

혹시라도 봉졸들이 근무태만, 부주의 등으로 봉화하지 않거나 처벌이 두려워 봉수대를 두고 도망가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무방비 상태에서 침략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봉수대가 정작 제구실을 못한 경우도 발생하자 1605년(선조 38년)에는 ‘파발제’가 실시됐다. 파발제는 말을 타거나 사람이 직접 달려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었다.

봉수대는 비록 임진왜란을 겪으며 왜군에 의해 역할이 마비되고 급기야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됐지만, 위기 상황을 대비하고 알릴 방법이 따로 없던 시절 봉수대의 역할은 필요 이상으로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역사로 남은 봉수대.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닥치기 전 불로써 연기를 피워 상황을 미리 알리던 봉수대는 지금도 몇몇 남아 정보 전달의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