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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솜 기자] 국가와 직장, 그리고 내 가족을 위해 장시간 일하는 문화가 존중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과 근무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히 나타나면서 정부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시점이다. 한국 사회의 만연한 장시간 근로 문화는 어디서 기인했으며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짚어봤다.

평균 노동시간 OECD 1위… 잇따라 드러나는 부작용
과도한 업무량뿐 아니라 야근 권장하는 기업문화도 원인

사례1. 증권사에 다니는 강모(22, 여, 경기도 과천시) 씨는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 야근이 딱히 필요하지 않아도 사내 분위기상 상사 퇴근 전까지는 초과근무가 암묵적인 약속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 씨는 “어차피 야근할 것을 아니깐 실제 일하는 시간에 집중을 못한다”며 “회사 임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맞춰서 직원들이 출·퇴근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분위기상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사례2. 지난 6일 법원은 등산 중 심근경색으로 급사한 김모 씨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전자파 관련 분야의 책임연구원이었던 김 씨는 사망 직전 한 달 동안 109시간 가까이 초과근무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지만, 건강 악화 등 그 부작용이 끝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장시간 근로 때문에 업무시간 대비 성과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장시간 근로의 원인을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 ‘지나친 경쟁의식’ 등으로 꼽았다.

지난해 1월 지식경제부와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0년 한국 근로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일은 오랫동안 했지만 효율성과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우리나라의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5만 6374달러였다. 이는 OECD국 가운데 23위로 중·하위권 수준이다. 또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5.1달러로 칠레를 제외한 OECD 30개국 가운데 28위를 기록, 최하위권으로 집계됐다.

장시간 근로의 폐해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최근 논란이 됐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현장 실습생의 70시간 초과 근무 후 뇌출혈 사고는 장시간 근로로 인한 건강 악화 현상을 대표한다.
지난달 핀란드 직업건강연구소와 런던 대학 공동연구팀은 초과근로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중증의 우울증세가 나타날 위험성이 두 배 이상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정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처장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을 통한 창조적 생각과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며 “그런데 장시간 근로로 이와 같은 기회가 없어져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렇듯 여러 가지 폐해에도 왜 아직도 장시간 근로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첫째로는 과도한 업무량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8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66.7%가 초과근무를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관련 ‘업무량이 많아 업무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경우는 특히 직장인들에게 많이 해당된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추구하는 기업이 근무시간 내 끝내지 못할 일을 주기 때문에 집에서도 잔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근이 보편화된 기업문화도 한몫을 한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퇴근 시간에 상사보다 먼저 나가지 않고 눈치 보는 현상이 만연화됐다”며 “상사나 사용자들이 장시간 근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일 열심히 한다’고 여기는 것 또한 문제”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지나친 경쟁의식과 성과에 따른 차별 시스템 역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장시간 근로를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열이 높듯이 일에 대한 성공 의식도 굉장하다”며 “이 때문에 지나친 경쟁을 하며 자신도 모르게 일중독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박성식 부대변인은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은 임금을 더 받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게 필연적”이라며 “대기업에서도 시간제 근로가 기본이라서 일이 없어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이 구조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시간 근로 단축은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이윤논리가 아닌 공동체적 관점에 기초하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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