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환 외통위원장이 8일 천지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신익희 선생의 철학과 부드러운 설득 정치 닮고파”

고건 전 총리 ‘뛰어난 행정가’ 평가
한미 FTA 폐기 “시대착오” 비난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격동의 대한민국 60년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국민소득 2만 달러, 무역 1조 달러, 수출 세계 7위,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 등등 셀 수없는 많은 수식어가 대한민국의 변화를 입증한다. 145년 만에 의궤를 찾아오는 나라, 세 번 만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마는 나라 그곳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변화에 비해 정치는 얼마만큼 변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주한 대사를 만나면 공통적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주원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성공적 정착’이다. 그러나 국민에게 보여지는 정치인의 모습과 정치판 풍토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표를 위해, 공천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에 염증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가 찾는 것이 ‘참 정치인’이다. 정치의 단맛 쓴맛을 본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정치를 하고, 그들이 닮고 싶어 하는 정치인은 누굴까.

민주통합당의 ‘한미 FTA 재협상 촉구’와 ‘한중 FTA 협상’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지난 8일 새누리당 김충환 외교통상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민선 강동구청장 3선을 지낸 2선 국회의원으로 20여 년 정계에 몸담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에서는 2번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정치 ‘바르게 잘 분배하는 것’

-참 정치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바른 것’ 서양에서는 ‘사회적 자원을 권력을 통해 잘 분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둘의 의미를 조합하면 ‘바른 가치를 가지고 사회적 자원을 잘 분배하는 것’이라고 본다. 참 정치인은 이 일을 잘 하는 사람일 것이다.

-강동구청장을 3번 하고 국회에 입문했다. 어떻게 걸어왔나.
언제나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하려고 힘썼다. 구청장으로 부임하고서 강동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해문제부터 해결했다. 도시행정학 박사다보니 도시를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집집마다 소화기 설치, 지하철 5·8호선 개통, 공원 설립에 힘썼다. 음식물쓰레기는 분리수거 공장을 최초로 세워 사료로 바꿨다. 국내 처음으로 주거지 우선 주차제를 도입해 주차분쟁을 해결하고, 발생한 수입으로 공용주차장을 신설해나갔다. 구청장 출마 시 지지율이 처음엔 48%였지만 마지막에는 68%를 얻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처음 47%, 두 번째는 59.5%를 얻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구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정치 이상과 현실이 다르지 않나.
한국의 정치는 계파 정치다. 내 의사가 있어도 당과 계파가 요구하는 것을 따라야 할 때 가장 힘들다. 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똑똑한 의원들이 많은데 당의 요구에 따라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면서도 한편 이해가 된다.

정치인이 자기 정치철학과 양심에 따라 발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에선 복합적 요소가 작용해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발의한 법안이 통과돼 국민이 혜택 받는 것을 볼 땐 정말 보람을 느낀다. 2008년에 말기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법을 발의하고 기초생활보장법, 기초노령연금법, 국민연금법 등 총 22개 법안을 개정해 국회 입법정책 최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정치 입문한 동안 선거풍토가 많이 바뀌었나.
70~80년대는 그야말로 고무신, 막걸리 선거였다. 고무신 나눠주고 막걸리 돌리면서 표를 얻었다. 90년대 초 만 해도 불법임에도 돈을 뿌리는 선거 풍토가 남아 있었다. 강동구청장에 출마했던 95년 지방선거부터는 선거풍토가 완전히 바뀌었다. 2004년부터는 ‘돈’을 건네다 발각되면 ‘50배’ 물어내는 제도가 나와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선거가 맑아졌다.

-SNS가 선거판을 바꾸는 시대다.
SNS는 국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개인 트위터 팔로워가 1만 명 정도 된다. 페이스북은 2개 계정에 약 6000명 정도, 카카오톡은 약 1200명과 연결돼 대화를 나눈다. SNS로 친해지면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한다. 지난 한미 FTA 비준안 통과를 앞두고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찬반 논쟁도 펼쳤다. 국민이 세부적인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의 솔직하고 적극적인 홍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적극 활용했다.

◆신익희 ‘설득 정치’ 고건 ‘공인의식’ 존경

-평소 존경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해공 신익희 선생이다. 상해임시정부 활동 등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해방 후에 국회 부의장으로 의회민주주의를 이끌었다. 항상 동지와 함께 행동하면서 겸양의 길을 걸었다. 대선 유세 중 급사하셨으나, 나라와 민족을 지극히 사랑한 애국자로 교육과 계몽에도 힘썼다.

-선생의 어떤 부분을 닮고 싶은가.
영어 강사로도 활동하신 선생은 세계화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또한 민주주의 민족주의 국민복지에 앞장섰다. 그 분의 철학을 무엇보다 닮고 싶다. 국민을 사랑하되 급진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부드러운 ‘설득의 정치’를 펼치셨다. 한마디로 덕과 실천의 정치가였다.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는 누굴 존경하나.
개인적으로는 서울시 공무원 시절 ‘서울시장’으로 모셨던 ‘고건 전 총리’를 존경한다. 그분 비서를 2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뛰어난 행정가’가 맞는 것 같다. 굉장히 선이 굵은 행정가였다. 서울시장 당시 고 전 총리는 목표에 접근하기위한 방법을 잘 세웠다. 공인의식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점이 존경스러웠다.

◆독도, 일본이 손 못 대게 해야

-독도와 관련된 외교 문제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안다.
독도에 3번 다녀왔다. 독도는 일본이 손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올해는 이사부가 지증왕 13년인 512년에 독도를 우산국에 편입시킨 지 1500년이 되는 해다. 기록과 역사적 증거가 있고 우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다. 관련 내용을 각 공관에 전달하고 대사들에게 설명도 한다. 일본 대사를 만났을 때 “울릉도에 가면 독도가 보인다. 보이는 땅에 가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일본은 1904년 이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았다고 주장하기에 교육이 중요하다. 반크 독도아카데미 동북아역사재단 등과 협력해 동해와 독도를 지키고 제대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08년에 2%만 독도 동해 표기를 제대로 했지만 현재 28%가 병행표기를 한다.

-야당이 한미 FTA 재협상을 촉구하고, 폐기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이나 폐기는 시대착오다. 공당의 대표가 말했다는 데 충격을 받고 있다. FTA를 통해 국가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 엄청난 경제성장 동력이 창출된다. 한미 FTA를 잘해서 일류국가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야당이 농수축산 농가에 대한 피해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해당 농가를 위해 예산 24조 원이 책정돼 있다. 서울시 1년 예산이 23조 원이다. 전체 인구 중 6%에 해당되는 국민을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책정했다. FTA를 통해 국민은 좋은 품질을 값싸게 구매하게 되고 무역량도 크게 늘게 된다. 농가나, 전통시장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 때 추진한 것을 매듭지은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타협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돼야 한다.

◆개방성과 관용성 지녀야 일류국가

-최근 한중 FTA 논의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현재 농수축산 부분은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라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소, 돼지 수입 1위 국가다. 중국이 개방되면 한국의 농수축산 농가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팔 수 있는 막대한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 국민적 합의와 설득이 이뤄진 부분부터 단계적으로 논의해 나갈 것이다.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개방성과 관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크게 보고 품을 수 있어야 하고, 문호를 개방하고 교류해야 국운이 융성해진다.

-정치 입문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지역구 의원부터 시작해서 승리하는 정치, 지지를 얻는 정치를 해서 내공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이장부터 시작해서 군수, 장관에 이어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사람이 됐다. 그런 식의 정치를 하면 불행한 정치가 아니라 긍정적인 정치를 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나 현실을 무시한 ‘무조건 한 번 해보고 죽겠다’는 식의 도전은 피해야 한다. 내 경우 서울시 공무원부터 시작해 지자체단체장 3선을 거쳐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했기에 실질적 정책을 추진하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정치도 정치인 자신이 행복해야 집착하지 않고 결실을 보게 된다.

<약력>
1954년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
95년~ 민선 강동구청장 3선
04년~ 17~18대 국회의원
08년 국회 입법정책 최우수 국회의원
현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海公 신익희 선생
(申翼熙, 1892~1956)
경기도 광주 출신.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해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상하이 임시정부 창설에 참여했다.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48년 7월에는 초대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으며 국회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국회의장직을 계승했다.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선거 유세 중 열차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교육과 계몽에도 뜻을 둬 국민대학교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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