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색 초상(1844년, 146.5×79.0㎝, 보물 제1215호,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한산 이씨 대종회 기탁)ⓒ(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백설(白雪)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梅花)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夕陽)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이색의 시조다. 탄식과 함께 매화에 빗댄 ‘우국지사’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말 유학자로 ‘부벽루’와 같이 문학사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다수 남겼을 뿐 아니라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킨 인물이었다. 고려 삼은(三隱) 중 한 명인 그의 가르침은 많은 제자를 통해 이어졌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정몽주ㆍ이숭인ㆍ권근ㆍ변계량, 그리고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된 정도전 등이 있다.

◆천인무간설 주장
이색의 사상의 밑바탕엔 ‘천인무간설(天人無間說)’이 자리하고 있다. 천인무간설이란 하늘과 사람에 사이가 없다는 것, 곧 하늘과 사람이 본래 분리돼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진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사상을 그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이 됐다는 단군신화를 비롯해 원효의 ‘일심사상’, 지눌의 ‘인불일체’ 사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시천주’ ‘인내천’ 사상과도 연결된다.

그는 사람과 하늘은 본래 하나이기에 사람은 하늘과 같이 숭고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같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철저히 수양하게 되는 ‘수양철학’을 이끌어냈다.

◆유ㆍ불ㆍ도 수용ㆍ융합
그는 유학자이기는 했으나 불교, 도교에도 관심을 갖고 유교의 입장에서 삼교를 융합하는 사상을 주장했다. 천인무간설에 기반해 하늘이 모든 것을 차별 없이 아우르는 것처럼, 하늘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모든 사상을 구별하지 않고 이 삼교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초탈원융철학(超脫圓融哲學)’의 모습을 보였다.

1328년 영덕군에서 출생한 그는 1341년 성균시에 합격해 진사가 된 후, 원나라 국자감 생원이 돼 성리학을 배웠다. 그리고 이후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대사성 등 여러 주요관직을 지내며 유학의 보급,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한국 성리학의 뿌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이색 영정에는 “천품은 순수하고 아름답게 타고났으며, 성인의 학문에 대해 정미한 곳까지 철저히 연구했다”로 시작하는 글이 쓰여 있는데, 이는 이색의 제자였던 권근이 스승의 인품과 학문을 칭송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성계 일파를 견제했으나 오히려 그들이 세력을 잡게 되면서 오사충의 상소로 장단으로 유배를 가게 됐다. 이후 함창․금주 등으로 이배된 그는 태조 4년에 풀려나 한산백에 봉해지고 이성계로부터 출사를 권유받았으나, 고사하며 뜻을 지켰다. 그리고 이듬해 여강 신륵사에서 숨을 거뒀다.

참고: 한국철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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