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41회 영국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후 한국선수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전문 기능 인력이 미래 국가 경쟁력 좌우한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우승국은 한국!” 영국 런던에서 태극기가 나부꼈다. 참가국의 청소년들 또한 한국의 우승에 손뼉을 치며 승리를 축하해줬다.

국제대회 통산 17회 우승. 그러나 그뿐이었다. 굉장한 성과임에도 몇몇 언론에서만 반짝 관심을 가졌고, 귀국과 동시에 이마저도 사라졌다.

이 같은 무관심 속에도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한국을 빛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있기에 미래의 국가 산업 경쟁력 또한 기대가 된다고 평한다.

◆“시야 넓히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어”
세계 기능 꿈나무들의 잔치라고 불리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각각의 기능 연구 개발의 결과를 제품에 적용, 숙련기술과 일부 서비스업의 가치를 뽐내는 종합대회다.

대회의 효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기능경기대회였다. 이후로 청소년들의 건전한 사고와 근로의식 함양, 심신의 건전화를 목적으로 1954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설립됐다.

지난해 기준 58개 회원국이 가입됐으며, 1971년까지 매년 대회를 개최하다 1973년 이후 2년마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66년 (사)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가 설립됐으며 이때 회원국에 가입됐다. 그리고 다음 해 첫 출전에서 금메달을 따기 시작, 지난해까지 26번 출전해 17번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능 강국’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관계자들은 국제대회 입상으로 한국을 빛내는 것 말고도 대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고 조언한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직업전문학교 김동철 기업지원팀장은 “대회를 통해 동일 계통의 기능인들과의 경쟁으로 본인의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다”며 “세계적으로 발전하는 기능의 흐름을 읽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행사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국내 대회 등 꾸준한 경쟁을 통해 개인의 기능 역량을 한층 더 향상시키는 역할도 한다”며 “정보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능도 습득할 수 있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에서도 국제대회와 비슷한 행사가 진행된다. 16개 시·도에서 오는 4월 열리는 지방대회는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지방대회 입상자들은 9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여기서 수상한 청소년들이 11월 국제대회 평가전을 거쳐 내년 6월 독일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총 3번의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국제대회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선수 대부분은 밤낮 가리지 않고 방학기간에도 학교에 나와 연습을 한다.

실수 하나에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아 이들은 항상 긴장한 상태로 연습할 수밖에 없다.

2001년 제36회 서울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차량도장 종목으로 금메달을 딴 김광식 씨는 “3년간 준비하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다 보니 더 떨리고 긴장됐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회 때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연습 때문에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우리 기능반 세계에선 ‘기능반’과 ‘일반 학생’이 있다”며 “일반 학생이 점심시간 공을 차고 놀 때 기능반은 그것조차 구경할 기회가 없다”는 출전 선수의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다.

▲ 지난해 제41회 영국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유환(19, 광주중앙고) 선수가 화훼장식 종목에서 기량을 뽐내고 있다. 화훼장식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출전 이래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위). 대한민국이 첫 출전한 1967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양복 홍근삼(우측 두 번째) 씨, 제화직종 배진효(우측 첫 번째) 씨가 귀국 후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아래 왼쪽). 2011년 모바일 로보틱스 직종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배병연, 공정표 선수(아래 오른쪽).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기능인 인정하고 인식 개선해야”
이렇듯 힘든 과정을 거치며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첫 출전과 동시에 금메달을 획득한 1967년 16회 스페인 마드리드 대회. 경기를 마치고 귀국한 양복 종목의 홍근삼 선수와 제화 종목의 배진효 선수는 당시 국민의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꽃다발을 받았다.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 결과가 종합우승이면 그나마 잠깐 관심을 받을 뿐이다. 뿌리 깊은 고학력 위주의 사회 분위기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모바일과 로봇 등 최첨단 산업 중심이 돼 일반 기능직이 천시를 받는 현상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서울대 공과대 김성철 교수는 “예전의 기능인들이 우리나라 산업의 국제 경쟁력에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며 “제조업 강국이었지만 (제조업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흔들렸지 않는가. 제조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능인들이 없다면 제조업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철 팀장 또한 “무역 1조 달러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기능 인력들의 우수한 제품 개발과 양질의 제품 생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동 국가들이 오일머니로 소득은 높지만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우수한 기능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전문 기능 인력이 있어야 국가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기능인들을 우대해달라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자 정부는 2010년 기능올림픽 입상자에 대한 처우를 체육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기능인들이 원하는 것은 ‘인식 전환’이었다. 지난 2009년 한 경제지가 역대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들은 ‘기능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원했다. 이들의 기능 자체와 땀방울을 인정해 주는 사회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1969년 제18회 벨기에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목공 종목으로 은메달을 딴 공수룡 씨도 “사회에서 기능인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요즘 전반적으로 (기능인을 낮게 보는) 사회 흐름이 조성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