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제, 학교폭력, 깊이 뿌리내린 일진, 이 모든 용어들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젠 모두가 나서는 걸 보아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대통령은 물론 정부가 나서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청소년의 정서불안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우선 인성(人性)은 없고 등수와 일류와 성장만 있었던 교육정책에서부터라 감히 말하고 싶다. 나아가 이를 부추겨 왔던 기성세대와 함께 그 중심엔 언론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청소년들이 눈뜨면 접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또 인터넷과 관련된 인터넷 문화다. 인터넷의 발달만 강조해 왔을 뿐, 인터넷의 발달이 이 나라의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에 대해선 관심 밖이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미련한 정부정책이요 기성세대다. 통일문제·경제문제보다 더 중한 게 바로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의 문제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젠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급기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다.

인터넷을 열면 포털이 자체 생산한 콘텐츠에다 검색과 동시 시작되는 각 언론사의 보도는 보도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농후한 글과 영상물로 퇴폐를 넘어 더러워 차마 눈을 둘 수가 없다. 각 언론사의 그럴 듯한 기사와 오피니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중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세대의 언론은 돈의 노예가 되어 자기 사명에 중심을 잃어가고 있는 혼돈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율배반(二律背反)이란 말이 바로 이에 해당될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있다.

세계적인 홍보기업인 에델만이 세계주요 25개국의 정부·기업·언론·비정부기구(NGO) 등 4개 주요기관을 대상으로 신뢰도를 물었다. 이 조사에서 정부·기업·비정부기구는 신뢰도가 하락했으나, 언론만큼은 신뢰도가 높았다. 특히 신문과 방송과 같은 올드미디어의 신뢰도는 지난해 29%에서 32%까지 신뢰가 상승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정부·기업·언론의 신뢰도는 낮아지고, 비정부기구(NGO)의 신뢰도만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늘날 언론이 이 사회와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대변하는 작은 증거가 될 것이다.

언론의 심각성을 종교라는 다른 측면에서도 엿볼 수 있는 예가 또 있다. 국민일보 노조들은 지난 연말연시부터 시작된 총파업 기간 중, 지난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금권선거와 관련된 사태에 대해 방관했으며, 보도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또 “국민일보가 진실을 전하는 언론사가 아닌 권력을 좇는 언론사로 전락했다”고 고백하며, 그 이유로 ‘한기총 허리띠 졸라매고 선한 사업에 매진’이라는 거짓 왜곡된 기사를 내보냈다고 실토하며, 교계와 국민 앞에 사죄한다고 밝혔다. 또 한기총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를 교체해 달라는 요구까지 해왔으며, 그때마다 그 요구를 쉽게 받아줬다고 자백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오늘날 언론의 자화상이다. 거짓과 왜곡, 선정성과 폭력성 그리고 허위와 과장으로 얼룩진 언론의 진면모(眞面貌)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같은 현실을 놓고 볼 때, 오늘날 청소년들의 그릇된 정서의 책임을 과연 언론이 피할 수 있겠는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그 사명을 회복해야만 한다.

이제 청소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계에서 나섰다. 그러나 그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할 따름이며, 근본적 대책은 못될 것이다. 임시방편이라 할지라도 급한 대로 해결책을 찾는 것도 맞겠지만, 중요한 것은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근본 해결책은 뭘까. 바로 교육이다. 교육으로 새롭게 창조해 나가야 한다. 교육은 학교만의 교육도 아니요 가정과 학원만의 교육도 아니다. 위기의식을 갖고 모든 기관과 모든 과정을 통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 있다면 바로 언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도경쟁과 상업적 광고에 눈 멀어있는 언론의 행태에서 벗어나 지도와 선도 그리고 계몽이라는 언론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야만 한다.

나라가 위급할 때 또는 나라를 잃었을 때, 언론의 역할과 그 사명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지난날의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 병든 청소년의 정서와 문화가 이 나라의 절체절명의 위기임을 인식하면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警戒(경계)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언론으로 거듭나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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