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적인 사찰 일주문 현판은 한자로 사찰 이름이 쓰여 있지만, 봉선사 일주문 현판은 한글로 ‘운악산 봉선사’라고 쓰여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임진왜란ㆍ6.25전쟁 등 숱한 어려움 겪어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당연히 한자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한 곳에 한글이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奉先寺’ 대신 ‘봉선사’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에는 ‘大雄殿(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모습이지만, 그 자리에 우리의 글 ‘한글’이 있기에 한편으론 반갑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 봉선사로 가는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천지일보(뉴스천지)
올겨울 최강 한파가 찾아온 지난 2일, 경기도 남양주 운악산 기슭에 자리한 봉선사를 찾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는 969년(광종 20) 창건된 사찰로, 원래 이름은 운악사(雲岳寺)였다.

이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남편 세조를 추모하는 뜻에서 사찰을 중창하며 ‘선왕을 받든다’는 뜻인 ‘봉선사’로 개칭, 오늘날에 이르렀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소실, 1637년 복구, 6.25전쟁으로 또 전소, 그리고 또다시 복원을 거치는 숱한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온 사찰이다.

봉선사를 찾은 날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가는 길에 쌓인 흰 눈을 밟는 느낌이 기분을 한껏 들뜨게 했고, 가는 길목의 나무들도 흰 눈이 쌓여 겨울의 정취를 더했다.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들도 흩날렸다.

봉선사 입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웅장하고 화려한 일주문. 그 크기는 위용이 넘쳤고, 문에 칠해진 색도 화려하고 뚜렷했다. 이 일주문은 지난 2005년 4월 완공된 건축물이어서 오래된 느낌은 덜했지만 세련된 느낌이 강했다.

그중 금빛 글씨로 쓰인 현판이 가장 눈에 띄었다. 보통은 어려운 한자로 사찰 이름이 쓰여 있기 마련인데, 봉선사 일주문 현판은 어린 아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운악산 봉선사’라고 쓰여 있다.

이 같은 특징은 봉선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범종루나 큰법당 현판도 마찬가지로 한글로 쓰여 있다. 여기에는 불교를 대중화하고자 했던 운허스님의 뜻이 담겨 있다. 운허스님은 한문 중심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로, 이 같은 뜻을 봉선사 건축물 내에서도 실현했던 것이다.

일주문에 그려진 그림들도 재밌고 귀엽다. 그중 원숭이 세 그림은 하나는 입을, 다른 하나는 눈을 가리고 있고, 마지막은 귀를 막고 있다. 과연 우스꽝스럽게 생긴 이 그림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 봉선사 내 자리한 유치원. 창밖으로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일주문을 지나 몇 걸음 걸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봉선사 내에 있는 유치원.

풍경이 달린 유치원 창밖으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종단 산하 유치원은 많지만, 중심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찰 내에 유치원 건물이 있는 곳은 드물어서 신기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흰 눈밭이 펼쳐지며, 눈밭 사이로 길게 이어진 다리가 보인다. 이곳은 여름철이 되면 붉거나 흰 연꽃, 푸른 연잎들로 가득해지는 연밭이다. 겨울이라 물이 얼고 그 위에 눈이 쌓여, 연꽃이 핀 연못의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드넓게 펼쳐진 이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면 멋진 장관을 이룰 듯했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여름에 봉선사를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봉선사 연밭. 겨울이라 눈이 쌓여 흰 눈밭만 보이지만 여름에는 연못 가득히 연꽃이 피어나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연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리를 지나니 매우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500여 년 된 이 나무는 느티나무로,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사찰을 중창하며 심은 나무다.

▲ 500여 년간 봉선사를 지켜온 느티나무. 오래 사는 이 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5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임진왜란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나무라고 한다. 오래 사는 이 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봉선사 대종이 보인다.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이 종은 높이 2m 38㎝, 입지름 1m 86㎝, 무게 2만 5000근에 달한다. 멀리서 보기에도 종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맨 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돼 있고, 어깨 부분에는 보살상들이, 아랫부분에는 빽빽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조선 전기 동종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범종루 출입은 관계된 스님만 가능하도록 제한돼 있어, 일반인들은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다. 입구에서 범종루를 보면 한자로 쓰인 현판이 걸려 있지만, 범종루 뒤쪽으로 가면 한글로 ‘범종루’라고 쓰인 또 다른 현판이 걸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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