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호리병처럼 입구가 좁은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팽팽하다. 핵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에 서방이 제재를 가하자 이란이 해협 봉쇄를 위협하며 파상적인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공할 타격력을 갖춘 항모 전단을 주변 해역에 속속 집결시키고 있는 중이다. 또한 영국도 해협 봉쇄 위협이 있다면 행동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이스라엘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이스라엘은 이웃 아랍 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이나 핵무기 개발에 가장 민감한 나라다. 그 이스라엘이 오는 4월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밝혔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성급한 이란에 대한 공격을 말리는 입장이다. 그의 이런 발언을 볼 때 이스라엘의 인내가 한계에 왔음을 시사하는 것인지 이란의 입장 변화를 꾀하기 위해 압력의 무게를 가중시켜 보자는 속셈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사태가 대단히 위험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움직임들을 볼 때 핵개발 의혹과 관련한 극적인 타협이 없으면 전쟁이라는 최후의 선택은 불가피해진 것 같아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의 대부분을 실어 나르는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다. 이란산 원유는 전량 이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에만 생명줄일 뿐 아니라 이란에게도 마찬가지의 치명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한국도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경제에 바로 주름이 가고 답답해진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이란산 원유의 공급이 중단되면 다른 공급 지역을 확실히 구해놓은 것이 아니어서 걱정을 더하게 한다. 세계는 하나다. 한국은 그 세계의 중요한 일원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이 실현되어 실제로 전쟁이 터진다면 객관적인 군사력으로 보아 이란이 미국의 상대는 아니다. 이란이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전쟁불사를 외치며 군사훈련을 계속해나가는 것을 보면 그들의 속내가 아리송하긴 하지만 전쟁을 하든 안 하든 미국과 서방의 약점을 읽어낸 것은 분명하다. 미국은 전쟁에 지쳤다. 계속되는 전쟁에 쏟아 부은 전비로 재정이 위태롭다. 군대의 숫자를 줄이고 국방비를 감축하는 조치를 시행중이다. 이런 상황에 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전쟁을 이란과 벌이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은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재정위기로 발이 묶여 발이 가볍지 않다. 이 같은 약점들을 아는 이란은 내심 ‘그런 너희들이 감히 어떻게 전쟁을 벌여’라는 계산을 갖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장난하다 정말 불낸다. 미국이 정말 마음먹는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이란과 전쟁 못할 정도의 처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쟁의 득실이 면밀히 계산되어 나오고 세계 주요 국가들을 설득할 명분이 충분히 축적됐다고 판단되면 강대국의 완력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에 끌릴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과 이란은 이미 지난 1987년에도 일전을 겨루었다. 그 전 해에 미 해군의 미사일 탑재 호위함이 이란 기뢰와 충돌해 피해를 입은 것이 확인되자 미국은 주저 없이 이란을 공격해 쓴맛을 안겼다. 미군 함모 전단의 위력에 호르무즈 해협 연안의 이란 군사 시설들은 무참히 파괴되고 구축함과 포함 각각 1척, 무장 고속정 6척은 완파되어 침몰되고 호위함 1척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하루가 채 안 걸린 전투의 결과다. 미군은 피해가 없었다.

이란은 그 때의 패배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란은 설마 이렇게 막강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미국을 상대로 원수를 갚고 진짜 물어뜯으려 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두려워 함부로 덤벼들지 말라고 무섭게 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평화적인 사태 해결의 희망이 아주 닫힌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른다. 국제 관계에서 전쟁과 평화는 언제나 의외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쟁일지 평화일지는 양측이 더 으르렁거린 뒤에 결정될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알 수 없다. 이스라엘이 기습적으로 사고를 쳐 미국을 전쟁의 늪으로 끌고 들어갈지도-.

어떻든 힘은 옛날 같이 강성하지는 않는데 여전히 세계의 경찰 노릇, 소방수 노릇을 해야 하는 미국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항상 딜레마를 겪는다. 대제국의 운명이지만 미국은 전쟁을 끊임없이 치르는 나라다. 핵보유 강대국과는 피차 멸망을 초래하는 확증 파괴의 핵 균형 속에서 평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자잘한 재래식 전쟁이 빈번하게 미국을 괴롭히고 지치게 한다. AD.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은 로마가 힘이 빠져가는 것을 감지한 주변 나라들이 늙은 사자를 하이에나 떼들이 공격하듯이 공격과 약탈을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서로마는 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물 쓰듯이 하며 변방에 군사 요새를 늘려나가고 확장했다. 이에 서로마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정치력의 과도한 소모가 겹쳐 국가가 부도위기에 몰리고 급기야는 망하고 말았다.

지금의 미국이 다소 힘은 좀 빠져 보이지만 그때의 서로마 제국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강성한 것은 사실이다. 강성한 만큼 미국은 역시 서로마 제국에 비해 훨씬 더 많은 해외기지 유지와 군사력의 투사에 출혈의 부담을 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있다. 서로마 제국이 직면했던 사정과 비슷하다. 온 세계가 미국의 국익이 걸린 시장이며 국익을 힘과 외교로 지켜야 하는 안보외교 무대이므로 이 도전에 대해 국력을 소모하는 응전을 포기할 수 없는 것, 이것이 미국이 처한 진퇴양난의 딜레마다.

더욱이 강대국으로 굴기한 중국이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면서 미국의 부담은 더욱 힘겹다. 미국의 항모 전단이 무시로 연안에 다가가도, 미국의 정찰기가 영해에 바짝 접근해 정찰 활동을 해도 속수무책이었던 중국은 이제는 그 같은 행동을 도발로 받아들이며 날카롭게 반응한다. 그 사나워진 중국과 미국은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한국의 서해에서 밀고 밀리는 승강이를 벌여야 한다. 이렇게 분쟁과 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는 세계의 모든 지역과 해역마다 한국의 국가 이익이 걸려있다. 이렇게 한국이 결코 국제 정세와 국제적인 전쟁과 평화에서 방관자에 그칠 수 없음을 호르무즈 사태가 웅변한다. 세계는 하나다. 한국이 그 세계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국제적인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러기 위한 외교 안보 역량의 비축이 절실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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