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등 우리네 속담 중에는 말과 관련된 것이 유독 많다. 그만큼 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에 관련된 것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손님이 음식점에 가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주문하자 요리사가 혓바닥 요리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이 손님이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요리를 주문했고 요리사는 또 다시 혓바닥 요리를 추천했다. 이에 손님이 화를 내며 그 이유를 묻자, 요리사가 건넨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입 속에 있는 혓바닥이고, 반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도 바로 입 속의 혀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도, 가장 맛없는 요리도 혓바닥 요리입니다.”

이 또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리라.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말 또한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 하나를 하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무심코 던진 말에 어떤 이는 평생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인터넷이 보급되고 SNS가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말’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스마트폰의 활성화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지금 말 한 마디의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번 뱉은 말 또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말을 쉽게 내뱉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욕설 섞인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이외수 씨의 계정을 통해 ‘취중진담’이라는 말과 함께 100만 팔로워에게 전달돼 그 파급효과가 더욱 컸다. 이 의원은 과거에도 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많았다.

비단 해당 국회의원만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마다 외쳐대는 공허한 울림, 실천 없는 공약들이 난무하고, 남을 비방하는 데에만 입의 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할 때가 많다.

말은 청산유수와 같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청산유수와 같던 말은 국민을 기만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았으니 이제 그들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 어려울 정도가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에 대한 중요성은 비단 이들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또한 말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물리적으로 가하는 폭력도 문제이지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걷잡을 수 없이 성행하고 있는 학교 내 폭력 중 하나가 바로 언어폭력이다.

물리적 폭력 또한 피해자에게 상처를 안기지만,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언어폭력은 그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싫증난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좋은 말도 그러할진데 욕설 섞인 말과 모욕적인 말을 집중적으로 퍼붓는다면 이는 무기만 안 들었을 뿐이지 사람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나아가 그 육체마저 병들게 하는 강도, 살인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SNS가 활성화된 시대에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무심코 던진 말이 오늘에 와서 다시금 인터넷 세상에서 회자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별 뜻 없이 남긴 악성댓글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 알고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무조건 싫어하고 비방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자기만이 옳다는 생각, 그냥 보기 싫어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비방하고 저주하는 것은 과연 누가 주는 생각이며 마음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인륜과 천륜이 바닥에 떨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라 하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기회는 있고, 다시금 세상 문화를 본래의 선함으로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은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한 첫 걸음으로 고운 말, 바른 말, 옳은 말, 희망을 주는 말 등 말에 대한 바른 용법을 다시금 배우는 것은 어떨까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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