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 다르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 作, 루브르 박물관 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일곱 번의 종교재판 끝에 19세 꽃다운 나이의 소녀에게 화형선고가 내려졌다.

그의 죄목은 마녀, 이교도, 우상숭배. ‘여제’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소녀, 잔 다르크는 이같이 안타깝게 스러져 갔다.

◆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소녀

1412년 프랑스 작은 마을의 소작농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는 16세 되던 해 “영국군을 물리치고, 왕세자 샤를을 왕위에 올리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를 계기로 샤를 왕세자에게 가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백년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프랑스 왕위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100여 년이 넘도록 긴 전쟁을 이어오고 있던 터였다. 오랜 전쟁으로 프랑스 영토는 황폐해졌고,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도 지치고 피폐해졌다.

이때 17세의 어린 소녀 잔 다르크가 엄청난 열정을 보이며 전장에 나서자 프랑스군의 사기가 엄청나게 치솟았다. 그가 실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 적들과 싸웠는지, 아니면 직접 싸우는 대신 프랑스군의 사기를 북돋는 ‘승리의 여신’ 마스코트 역할만을 했는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

하지만 어린 소녀의 등장과 그가 보여준 용맹함이 프랑스군의 사기를 북돋아, 열세였던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사실에는 많은 역사가 입을 모은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길 바라던 프랑스군의 소망, 애국심과 합치되며 더욱 그 힘을 발휘한 것이다.

◆ 19세 꽃다운 나이에 생 마감

그의 활약으로 프랑스는 전세를 역전했고 이는 샤를 7세가 왕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샤를 7세는 ‘전쟁의 영웅’으로 떠오른 잔 다르크의 인기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던 중 영국군이 부르고뉴군과 손잡고 프랑스를 재침입해, 잔 다르크가 다시 전장에 나가게 됐다.

이때 잔 다르크가 포로로 잡혀, 부르고뉴 공작이 프랑스 정부에 몸값을 요구했을 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 대한 질투 때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결국 영국군의 손으로 넘어간 잔 다르크는 이단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재판은 그가 ‘성녀’인지 ‘마녀’인지에 관심이 없었다. 영국군은 백년전쟁의 전세를 뒤집은 잔 다르크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터였고, 악마의 힘을 빌려 프랑스군이 승리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마녀’로 몰아세웠다.

당시는 여성이 남장을 하는 것이 종교적인 죄로 간주돼 재판부는 잔 다르크가 전장에서 남장한 사실을 두고 추궁했다. 이에 잔 다르크는 전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변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잔 다르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사제를 거치지 않고는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없다면서 그를 ‘이단’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잔 다르크는 마녀, 이단으로 확정돼 1431년 5월 30일 산 채로 군중 앞에서 화형에 처해지며 생을 마감했다. 이후 그의 마녀 혐의가 벗겨지고, 성녀로 시성되긴 했지만 이 모두는 그가 죽은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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