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익 정치평론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공포안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제 드디어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겠다는 다행스러움과 청소년들의 육체적, 정신적 미숙함이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교차했다. 자유 민주국가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인권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에서 청소년들의 기초적인 인권을 지켜주고 보장해야 하는 기성세대들의 의무가 이제야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은 인권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의 권리에 대해서도 표기되어 있고 차별을 받지 않고 교육을 받을 권리도 명시되어 있다. 서울시의 조례는 헌법과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청소년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으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수천 년 전통으로 내려온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교육자의 무한권리를 축소하고 피교육자인 학생의 권리를 중심으로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일제의 잔재인 교육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일제의 잔재가 아닌 수천 년 교육전통을 바꾸는 것이고 이는 과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 학생인권 조례는 50개조와 부칙 2개조로 이루어져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에게 무한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조 3항을 보면 '학생은 인권을 학습하고,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며, 교사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어 학생에게는 권리와 함께 자기 인권을 알고 보호할 책임과 함께 타인의 인권을 존중할 책임도 함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필자의 학생시절을 뒤돌아보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학생인권의 신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교사로부터 받았던 불이익을 생각해보면 서울시의 학생인권 조례안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비록 미성숙한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답답하고 말 못할 고통을 겪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조례안이 너무 파격적인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을 보고 우려의 느낌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조례안대로라면 교사가 수업이나 학생지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받지 않고 교사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대해서 자유로운 권리, 정규수업 이외의 어떠한 수업도 강요받지 않고 교우관계도 교사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교사는 성적공개를 비롯한 어떤 개인정보도 누설할 수 없고 소지품 검사도 할 수 없고 학생기록부도 학생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다. 반성문이나 서약 등을 강요할 수 없고 학생은 양심에 따라 조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도 거부할 수 있다. 학생은 자치활동 이외에 정치활동도 할 수 있으며 학교는 이런 자유를 인정해야만 한다. 또 학교운영에도 직접참여 할 수 있으며 100명 내외의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 20명 이내의 학생이 참여할 수 있다. 또 학생규정 개정심의위원회에도 학생의 참여를 규정하고 있다. 즉 학칙을 정하는 일에도 학생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학생인권 조례는 학생의 권리장전으로 불려도 될 정도로 학생의 편에서 만든 조례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잘 만든 것이라고 하겠지만 학생의 권리는 철저하게 보장하고 있는데 반해 학생의 의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조례안이 우려스러운 점은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도해야 할 교사의 역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정도의 조례가 시행된다면 이제 학생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들에 대해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교사는 학생지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고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부를 강요해서도 안 되는 서울시 학생 조례안은 교사가 잘 가르치려고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고 교사의 도리가 없어지고 그저 직장인으로서의 교사만 있을 것 같다. 교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교사의 질도 떨어질 것이고 교육의 수준 저하도 우려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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