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배반하고 떠난 도편수의 연인 상징
수백 년간 처마 떠받드는 벌 서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전등사에는 재밌는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하나가 대웅보전 처마 밑에 있는 ‘나부상’에 얽힌 전설이다.
◆도편수의 사랑과 ‘나부상’
대웅보전 네 모서리 기둥을 올려다보면 독특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처마를 떠받들고 있는 ‘나부상’인데, 이에 얽힌 재밌는 전설이 전해진다.
17세기 말,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던 도편수는 공사 도중 한 주막의 주모와 사랑에 빠졌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돈을 주었고, 두 사람은 대웅보전 불사가 마무리되면 살림을 차리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불사가 마무리될 무렵 도편수가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주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에 도편수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껴 그 주모를 생각하면서 대웅보전 네 군데 처마 밑에 추녀는 떠받들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만들었다.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위엄과 기품,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웅보전에서 이 같은 설화가 얽힌 나부상을 마주하니 사찰을 둘러보는 재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나부상’에 얽힌 전설은 그리스 신화 속 ‘두 어깨로 하늘을 떠받들어야 했던 아틀라스(Atlas)’, 죄를 짓고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됐다는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게 했다.
한 남자를 배반한 벌로 몇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무거운 처마를 떠받들어야 했다는 나부상에서, 죄로 인해 오랜 시간 ‘사망’을 지고 살아온 인류의 모습이 생각났다.
나부상은 각 모퉁이에, 총 4개가 있는데 이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손 모두를 올린 조각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왼손, 어떤 것은 오른손으로 처마를 떠받들고 있으며 표정들도 기쁨, 분노 등 다양하다. 마치 우리네 삶이 작은 조형물에 모두 녹아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탱화
대웅보전 내부에는 인천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목조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놓인 석가모니불은 매우 큰 귀를 하고 있으며 삼존불 모두 뛰어난 균형감과 조각 솜씨를 자랑한다.
그 위로 보이는 닫집(법당 안 탁자 위를 덮도록 만든 집의 모형)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다. 닫집 천장엔 섬세하게 조각된 극락조가 날고 있고, 여의주를 문 용들도 생동감 있게 몸짓하고 있다.
천장은 용, 물고기, 연꽃, 극락조 등 다양하고 화려한 장식들이 가득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웅보전에서 옆으로 가면 약사전이 보인다. 대웅보전과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약사전 역시 보물 제179호로 지정돼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건물 내부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 약사여래불은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석조로 조성됐다고 전해지며 현재는 금박으로 개금돼 있다.
불상 뒤로는 약사전 후불탱이 걸려 있는데 탱화 중앙에는 긴 불단 위에 약사여래와 일광보살·월광보살의 약사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약사여래는 왼손에 금빛 약함을 들고 있으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붉은 원과 흰 원을 각각 쓰고 있는데 이는 해와 달을 상징한다.
그 옆으로는 인천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된 현왕탱이 걸려 있다. 가운데 커다란 현왕이 그려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판관·녹사·동자 등 여러 명이 둥글게 배치돼 있다. 이 탱화는 사람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심판한다는 현왕과 그 권속을 묘사했다.
천장은 우물천장을 중심으로 주위는 빗천장으로 만들어졌으며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