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판결에 불만을 품고 노골적으로 판사를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어떤 기관보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 사법기관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 재판장이었던 김형두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집 앞에 보수단체 회원 3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김 판사의 법복을 벗겨라” 등 구호를 외치며 김 부장판사의 집 벽면과 유리창에 계란을 던졌고 급기야 비난 성명서를 배포하려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여기에 최근 전직 교수의 석궁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 1주일 만에 관객 90만 명을 넘어서면서 사법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법부는 이 같은 일들이 제2의 ‘도가니’ 사태로 이어질까 잔뜩 염려하는 눈치다. 대법원은 27일 성명에서 “특정 사건의 재판장을 목표로 한 집단적인 불만 표출행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부러진 화살’은 기본적으로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고 강조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판결에 불만을 품은 데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국민의 사법 불신이 똬리를 틀고 있다. 광복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사법부의 특권 의식과 권위 의식이 낳은 결과다. 일부 판사가 사건 당사자들을 무시하거나 윽박지르고 반말과 비속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심지어 호통을 치는 것도 이러한 잘못된 의식에서 나온 작태들이다. ‘종북 판사’ ‘빅엿 판사’ ‘금품 수수 판사’ 등은 입에 담기도 부끄럽다.

그럼에도 판결에 대한 집단행동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자제해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사회 질서가 무너진다. 재판에 불만이 있다고 법관을 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것은 법치주의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법권은 국민 주권이 부여한 고유 권한이다. 적법한 사법절차에 따라 판결이 내려졌다면 그에 승복해야 한다. 사법 개혁은 그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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