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전당대회 돈봉투’를 공개하여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 그가 지목한 한 원로 정치인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졌고, 한나라당 전체의 이미지가 다시 실추되는 등 말 한마디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 주는 중이다. 한편으론 민주당에서도 돈봉투 의혹이 제기되는 등 여야 할 것 없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익’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다. 흔히 당장의 이익과 나중의 이익을 잘 생각해 보자는 말들을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이익을 앞에 두고서도 나중에 생기게 되는 이익을 고려하여 정직하게 또는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서 현명하게 언행하자는 뜻이리라.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손쉽게 현혹되곤 한다.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에게 돈봉투가 제공되었을 때 어떠한 생각과 판단을 할까? 아마 추측하건대 이 돈을 받아서 뒤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면 받기도 할 것 같다. 아니면 돈의 액수에 따라서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관례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고민 없이 받는 정치인이라면, 그는 이미 타락한 사람이다. 반면에 불법적이거나 뇌물 또는 향응의 성격이 있는 돈이라면 단 1원이라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훗날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훗날의 이익을 생각하여 그와 같이 행동한다면 정말 현명한 사람이요, 만일 훗날의 이익 여부와 상관없이 그와 같이 행동한다면 정말 깨끗한 사람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비밀은 결국 알려지는 법이다. 혼자서 몰래 돈을 받았다고 해서 비밀이 지켜질 수 없다. 돈을 준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기에 언젠가는 세상에 밝혀질 것이다. 정치인들이야말로 눈앞의 이익에 탐하지 말고 먼 훗날의 이익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대성할 것이다.

작고한 노무현 대통령은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치 역정을 보냈다가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출마만 하면 당선이 확실했던 안철수 교수는 박원순 현 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해서 지금은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마시멜로 실험이 생각난다.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월터 미셸은 네 살 배기 아동들에게 달콤한 마시멜로 과자를 하나씩 주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한 개를 더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15분 동안 방안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곧바로 마시멜로를 먹는 아이에서부터 혼잣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동 등을 통해 유혹을 참으려는 아이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당장의 욕구를 참는 데 성공하여 마시멜로 두 개를 얻을 수 있었던 아이들은 청소년이 된 후에도 보다 높은 성취 능력을 보였고, 자기 확신이 강했으며, 좌절에 대한 대처 능력이 보다 더 뛰어난 특성을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마시멜로를 먹었던 3분의 1가량의 아이들은 좌절에 대한 인내력이 약했고, 자신을 쓸모없거나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했으며, 화를 잘 내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서 말다툼이나 싸움에 휩싸이는 경향이 높았다. 다른 연구 결과에서도 참을성 있는 아동들은 성인이 된 뒤 비만 또는 약물 중독이 되거나 이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들에게조차도 참을성과 절제 능력이 훗날의 성공과 행복을 가늠 짓는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 목전의 이익과 유혹을 견뎌낼 수 있는 참을성과 절제 능력이 과연 얼마만큼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서 수많은 정치인들이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불공정한 언행을 하거나, 참을성과 절제 능력이 없는 인격을 보이거나, 또는 이익 완수를 위해서 비겁한 과정을 밟으려고 한다면, 국민의 선택이라는 나중의 이익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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