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지금 다시 들어봐도 쓴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격(國格)을 높이자는 취지로 2009년 12월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 때 한 말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면서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없애고 법질서를 지키게 해달라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었다. 법질서와 도덕을 지키는 것이 국격을 높이기 위한 여러 사안 가운데 기본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이명박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대형 사건들이 마치 쓰나미처럼 몰아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설 민심을 전한 한나라당 의원들까지도 ‘최악의 국면’임을 인정할 정도로 사태가 심상치 않다. 2년 전 이 대통령이 말한 국격을 이명박 정부 스스로 추락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누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
여기에 국격을 짓밟는 행태가 하나 더 추가됐다. 6선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하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과거지사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극히 최근의 일만 놓고 보더라도 ‘상식 밖의’ 그의 언행이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장의 처신이 국민의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 그를 지도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박희태 의장은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테러 사건이 터졌을 때 특별한 관심조차 보이질 않았다. 그 특유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는 식이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공격한 사상 초유의 사이버 테러 사건이라면 박희태 국회의장이 먼저 국회를 대표해서 단호한 응징과 대책을 호소했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었고 그 뜻을 전하는 것이 국회의장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번 사건에는 자신의 비서 출신이 핵심 인물로 연루돼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국민 앞에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옳았다.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회의 명예와 국민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 의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난 2008년 박희태 의장이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된 전당대회에서의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당시 자신을 보좌했던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실까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고, 조만간 박 의장 자신도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장 정도라면 자신은 상처를 받더라도 대한민국 국회와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따라서 당장 사태의 책임을 지고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 일반인 신분으로 검찰수사를 받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어울리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 의장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는 식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서도 사퇴를 촉구하는 발언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번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할 테면 해보라는 식에 다름 아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국회의 권위나 국민의 명예가 어떻게 되든 말든 그 어떤 비난과 모욕을 받더라도 끝까지 버티겠다는 그 오만함과 불손함은 국격의 차원을 넘어 인격으로 보더라도 부끄럽고 누추하다. 더 이상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키지 말고 하루빨리 국회의장직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어떤 경우라도 국민과 국회를 우습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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