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20년 전쯤 ‘삐삐’라는 게 처음 등장했다. 삐삐라는 게 연락받을 전화번호가 찍히는 호출기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다녀야 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를 찾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성질 급한 상사가 시도 때도 없이 삐삐를 쳐대는 통에 직장 생활 못해 먹겠다며 푸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도 잠시, 휴대 전화가 나타나면서 삐삐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휴대 전화, 손전화, 휴대폰 등 그 이름을 놓고서 이게 옳으니 저게 옳으니 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휴대 전화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스마트폰 시대다. 스마트폰을 갖지 않으면 원시인 취급을 받을 지경이다.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 삶이 과연 더 스마트해지기는 한 걸까? 기기는 분명 더 스마트해져가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은 오히려 더 바보가 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삐삐시절에는 호출을 받고서도 공중전화가 없어 전화를 할 수 없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정신상태가 글러먹은 사람으로 찍힌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생기는 증상을 테크노스트레스라고 하는데, 많은 현대인들이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테크노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은 퇴근 후에는 과감하게 휴대 전화를 던져버리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퇴근 후 아침 출근 전까지는 전자 장비의 선을 아예 빼버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 전화에 강박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환청을 듣는가 하면 미동도 하지 않은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너 떨지 않았니?”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아닌지, 걸려올 전화를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5분 이상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확인해야 할 정도라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워시스터대학교 심리학과의 리처드 볼딩 교수가 대학생 등 100여 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측정 검사를 했더니, 스마트폰을 자주 체크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있었다. 신호음을 환청으로 듣고 있는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아쇼크 아가왈 박사팀이 2011년 의학저널 <임신과 불임>에 발표한 것에 따르면, 휴대 전화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정자 수가 적었고 정자의 질도 낮았다. 2007년 미국 위스콘신대 의대의 지젠 얀 박사팀이 숫쥐를 매일 3시간씩 18주 동안 휴대폰 전자파에 노출시키자 정자 세포가 죽어버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휴대 전화 사용을 줄여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휴대 전화가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인류학자로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의 사용자경험연구소장인 제네비브 벨 박사는,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도록 하는데, 현대인들은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에 창의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늘 한낮까지 침대에서 뒹굴며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데카르트의 경지에 오를 형편은 못 되더라도, “나는 전화질을 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현실에서는 좀 벗어나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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