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江山」‘재약산’과 ‘천황산(사자봉)’

‘재약산’ 사자평 고원에서 만난 하늘 길

글마루 문화탐사팀이 이번에 방문한 곳은 밀양과 양산이다. 밀양에는 재약산이 있다. 재약산은 신라시대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과 약수를 찾아 헤매다 이곳에 이르렀고 왕자는 영정(靈井)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됐다는데 재약(載藥)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지만 산 꼭데기에 넓은 평원이 있어서 영남의 알프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름다운 우리강산. 그 강산에 얽힌 뜻깊은 사연을 들어보자.

 

 

 

밀양시 단장면에 위치한 통도사의 말사 표충사. 사찰 내로 들어서니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충사를 둘러싼 산세는 기골이 장대한 의병들이 병풍처럼 믿음직스럽게 서 있는 모습을 떠오르게 할 만큼 웅장했다. 이곳에 모셔진 3대 선사의 기개가 절을 감싸고 흐르는 듯 범상치 않은 기운마저 느껴졌다.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은 표충사 뒤로 펼쳐진 재약산에 오르기로 했다. 신라 흥덕왕 4년에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과 약수를 찾아 두루 헤매다 이곳에 이르렀단다. 왕자는 영정(靈井)약수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됐는데 그 뒤로 이 산을 재약(載藥)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일행도 산 어딘가에 있을 영정약수를 찾아 산행에 나섰다. 겨울산행이라 하지만 이상하게도 일행 외에는 등산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은 폐쇄된 산행코스를 따라 일행이 올라간 것이었다. 약수는커녕 길조차 찾지 못할 뻔했다. 길이 난 듯 나지 않은 듯 흔적만 남아 있는 산행코스에는 다행히 이 산을 올랐던 이들이 남겨놓은 이정표가 있었다.

드문드문 나뭇가지에 매인 산악회 리본이 일행의 유일한 안내자가 됐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수많은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래도 지체 없이 올라야 했다. 그렇게 길을 찾아 가다 보니 어떤 일이든 처음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이의 고충이 얼마나 심했을지 생각하게 됐다. 그 길이 얼마나 외롭고 두려울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할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올라가니 이제는 리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산세를 헉헉거리며 오르자니 이러저러한 잡생각도 잊은 지 오래다. 오로지 빽빽한 나뭇가지와 바위틈 사이로 어렴풋하게나마 보이는 하늘만 바라보고 오를 뿐이다. 하늘이 활짝 열리기를 간절히 고대하면서 말이다. 드디어 재약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길에 들어섰다. 오솔길처럼 길이 뚜렷하게 나 있다. ‘길이다!’ 길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 이 길만 따라가면 목적하는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앞서 걸어간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이 길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왔다.

능선 양쪽으로는 푸른 하늘과 맞닿아 채색화를 그린 듯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맥이 장관이다. 이것이 영정약수가 아니겠는가. 능선을 따라 걷다보니 천황산 정상을 알리는 돌비석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동남쪽으로 펼쳐진 사자평 고원은 이곳이 정상임을 잊게 할 만큼 드넓었다. 가을이면 장관을 이룰 억새 군락지가 고된 산행에 지친 일행을 반겨주었다. 사자평이라는 이름은 ‘사자가 뛰어내리려고 잔뜩 도사린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자봉’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글: 김일녀 기자, 촬영: 손성환 기자, 사진: 최성애 기자)

 

▲ 천황산(사자봉) 쪽에서 바라본 재약산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 황금빛 재약산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 재약산의 반대편 천황산(사자봉)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 천황산(사자봉) 정산을 향해 한 컷! ⓒ천지일보(뉴스천지)

 

 

▲ 재약산과 천황산 사이에서 본 해넘이 ⓒ천지일보(뉴스천지)

 

 

▲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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