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휘(국방문화혁신포럼 대표)
지난해 10월 21일 동아시아연구원이 주최한 제5회 한미동맹컨퍼런스 『동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질서와 한미동맹』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1조 달러의 적자와 완만한 경기회복으로 베트남전 이래로 경험한 적이 없는 대규모의 경제적 재정적 고통에 직면해 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방예산의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이 건국 이래 국방예산을 감축하는 조치는 처음이며, 어쩌면 미국의 쇠퇴기(the decay of USA)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바로 미국의 신국방전략으로 말이다.

1월 5일 발표된 미국의 신국방전략의 핵심은 ‘2개 주요 전쟁 동시 수행’을 포기하고 지상군을 감축하며, 해·공군 위주로 재편한다는 것이다. 탈냉전 후 미국은 두 곳의 주요 전구(戰區)에서 지역 전쟁을 수행한다는 2MRC(2 Major Regional Conflict) 전략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윈-윈(win-win)’ 전략이다. 하지만 재정적자 해결 차원의 골육지책(骨肉之策)으로 국방예산을 줄이고 전략을 새로 만들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새 지침을 발표하면서 이 2MRC 전략을 포기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2MRC 전략은 모든 전력을 투입해 두 지역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다는 것이었지만 이젠 미국도 국내경제위기 앞에서는 국익을 우선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신국방전략지침은 ‘윈-스포일(win-spoil)’ 또는 ‘원 플러스(one plus)’로 표현할 수 있는데,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면 한 곳에서 승리하되 그때까지 다른 전쟁은 억지 상태를 유지하면서 유휴전력을 이전하여 승리를 추구한다는 개연성에 근거하는 전략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이 국방비를 1000억 달러씩 투입하면서 국방력이 급부상하자 미군 전력의 중심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자칫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 수 있는 동북아정세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새로운 ‘원 플러스’ 혹은 ‘윈-스포일’은 오히려 한반도를 더 중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자주국방’의 국방력 증강이 시급한 시대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도 신국방전략지침 첫머리에 한반도 안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이 상황은 한반도의 불안정이 증가한다고 재해석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안보상황분석과 대비에 철저해야 한다. 우리가 이를 확대 해석해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이 변한다’고 과잉반응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고로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르기를 “군사는 나라의 가장 큰 일로서 국민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니 신중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병자, 국지대사, 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하여 추호의 빈틈도 없어야한다는 것을 경구(警句)하였으니,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한·미동맹은 포괄적 동맹이었으나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2006.10.9/2009.5.25)과 비대칭 전력강화 때문에 양국은 이를 전략동맹으로 강화하였다. 전략을 바꿀 때 협의하는 게 전략동맹이다. 이번 발표 이전 미국은 한국에 사전 설명을 하고 향후 긴밀한 협의를 약속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 때 주한미군 3500명을 차출한 뒤 사후 통보한 것과 다른 측면에서 안보상 불협화음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미국의 전략 전환과 관계없이 2015년 전작권 전환에 대비해 국방개혁은 가속화해야 한다. 작전지휘체계를 단일계선화하는 상부지휘구조 개선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고, 전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개혁법안이 지난해부터 국회에서 표류하는 상황을 보면 과연 국방안보를 생각하는 정치지도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과거 역사의 전쟁교훈은 정쟁(政爭)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방을 소홀히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말하고 있다. 고구려가 연개소문 사망 후 정권투쟁으로 패망했고, 조선 선조 때 사색당쟁이 부른 조일전쟁(임진왜란)이 있었다. 구한말 고종 때 친일파, 친러파, 친청파로 경술국치를 맞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정쟁으로 자주국방력이 갖추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 더욱이 지난 62년 전 동족을 향해 무자비한 침략을 했던 북한의 전쟁위협을 억제해야 하는 안보현실을 냉정히 돌이켜 보면 지금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국민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회 상황은 어떠한가? 내부의 적들이 발호(跋扈)하는가 하면 국방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팽배하는 등 실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기에 국가를 책임진 지도자들이 미국의 신전략에 연계한 대비책과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되면서 다가올 안보변수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우리의 ‘신국방전략’을 미리미리 보완해야 할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휘호로 남기신 박 대통령이 생각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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